프랑스 입양 동포와 한국을 잇는 다리, 이제 누가 이어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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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회복 등 입양 동포 지원해 온 대사관 담당자, 한국 규정상 올해 말 업무 종료
-입양인 협회, 대통령과 재외동포청장에게 업무 연장 요청 서한 보내
-오랜 경험과 신뢰로 입양인들의 ‘대모’ 역할…지원 공백 우려

이미지: AI 생성
프랑스로 입양된 한인들에게 한국은 태어난 나라이면서도 때로는 언어와 문화, 복잡한 행정 절차로 인해 쉽게 다가갈 수 없는 나라다. 자신의 뿌리를 찾고, 잃었던 한국 국적을 회복하고, 한국과 다시 관계를 맺으려는 이들에게는 그 길을 함께 걸어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그동안 주프랑스 한국대사관에서 동포 업무를 담당해 온 이춘애 실장은 프랑스 입양 동포들에게 바로 그런 존재였다. 국적 회복을 비롯한 여러 행정 절차를 돕고, 입양 동포와 한국을 연결하는 실질적인 역할을 맡아오면서 이들 사이에서는 ‘대모’로 불릴 만큼 깊은 신뢰를 쌓아왔다. 그랬던 이춘애 실장이 한국의 규정에 의해 올해 말에 업무를 마치게 되었다.
이에 프랑스 입양인 사회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문제는 한 사람의 자리를 누가 대신하느냐에만 있지 않다. 오랜 시간 쌓아온 경험과 신뢰, 그리고 입양 동포 한 사람 한 사람의 사정을 이해하며 이어온 ‘연결의 역할’을 어떻게 지속할 것인가라는 보다 근본적인 질문이 남기 때문이다.
입양 동포들의 국적 회복 등을 담당했던 이춘애 실장의 올해 말 업무 종료와 이로 인해 입양인들이 우려하고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듣고자 <파리광장>은 프랑스 입양인 단체인 ‘Racines Coréennes(한국의 뿌리)’의 로랑 뒤물랭·이재동(Laurent Dumoulin–Lee Jae Dong) 회장과 셀린 리스토르(Céline Ristor) 전 회장이자 명예회장 그리고 협회에서 임원으로 봉사하고 있는 양영자 씨를 만났다.
프랑스 입양인 사회의 ‘든든한 버팀목’
이재동 회장은 이재명 대통령에게 보낸 서한과 함께, 지난 9월 9일 이 대통령의 프랑스 국빈 방문 당시 열린 동포 간담회에서 전달하고자 했던 요청 사항도 공개했다. 한국어로 번역된 서한에는 입양인 사회에서 이춘애 실장이 해온 역할과 그 중요성이 상세히 담겨 있었다. 그는 이 실장을 프랑스 현지 입양인 사회의 ‘든든한 버팀목’이라고 표현하며 자신 역시 국적 회복과 친가족 찾기, DNA 검사 등 복잡한 절차에서 도움을 받아왔다고 밝혔다. 특히 한국과 프랑스 입양인 사회 사이에 오랫동안 쌓아온 신뢰와 연대가 끊이지 않도록 이 실장의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셀린 리스토르(Céline Ristor) 명예회장 역시 지난 동포 간담회를 앞두고 이춘애 실장의 지속적인 근무 필요성을 대통령에게 건의할 예정이었다. 그는 이 실장을 대사관과 한국계 입양인 사회를 잇는 중요한 연결고리로 평가하며, 복수국적 신청과 친가족 찾기, DNA 검사 등 입양인들의 뿌리 찾기에 오랫동안 실질적인 도움을 제공해 왔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 실장이 입양인 사회의 상징적인 존재가 된 만큼, 본인의 동의를 전제로 현재의 역할을 일정 기간 더 이어갈 수 있도록 예외적인 방안을 검토해 달라고 요청할 예정이었으나, 시간 관계상 실제 발언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이재동 한국의뿌리협회 회장은 입양인들이 프랑스 한인 공동체의 일원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데에는 이춘애 실장의 꾸준한 노력이 큰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재명 대통령의 불법 입양 문제에 대한 공식 사과 이후 아동권리보장원의 관련 인력이 확충되는 등 입양인 지원을 둘러싼 여러 변화가 이뤄지고 있는 시점에서 오랜 경험과 신뢰를 쌓아온 이 실장의 퇴직은 입양인과 한국과의 연결에 공백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프랑스로 입양된 이들을 다시 한국과 연결하는 일은 공관의 행정 업무만으로 완성되기 어렵다. 국적 회복과 친가족 찾기에는 행정적인 지원이 필요하지만, 그 과정에는 한국어와 프랑스어, 두 나라의 문화와 제도를 이해하며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역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역할이 왜 필요한지는 <파리광장>이 직접 만난 한 입양인의 사례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한국 국적 회복을 결심하고 신청 절차를 밟았지만, 예상보다 복잡하고 까다로운 과정에 지쳐 한때 포기하기까지 했다. 그러다 다시 이춘애 실장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절차를 하나씩 확인해 나가면서 결국 국적 회복 신청을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이 실장은 “내 06으로 시작하는 개인 휴대전화 번호 알고 있지?”라며 어려움이 생기면 언제든 직접 연락하라고 했다고 한다.
단순히 행정적인 문의에 답하는 담당자를 넘어, 필요할 때 개인적으로 연락해 도움을 청할 수 있을 만큼 오랜 시간 입양인들과 신뢰를 쌓아왔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 입양인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으며 느낀 것은, 입양인들에게 필요한 것이 단순한 서류 작성이나 절차에 대한 안내만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낯선 한국의 행정제도를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고, 막히는 부분을 함께 풀어주며, 때로는 복잡한 과정에 지쳐 포기하려는 사람에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길을 알려주는 경험 있는 조력자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과 신뢰는 매뉴얼만으로 하루아침에 이어받기 어렵다.
한인 사회서도 업무 연장 바라는 목소리 이어져
한인 사회에서도 이춘애 실장의 업무 연장을 바라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김종희 프랑스 한인회장은 "이춘애 실장님은 공증 등 대사관 업무에 어려움을 겪는 한인들을 적극적으로 안내하고, 한인회와 재외동포청 간 업무가 원활히 이뤄지도록 지원했으며, 한인회 행사 시 영사동 사용 등에도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했다. 이 회장은 "이 실장의 퇴임이 아쉽다"고 하면서, "이춘애 실장님의 경험이 교민 사회에 계속 이어지면 좋겠다"고 했다.
재불한인여성회(코윈 프랑스) 정고스란 회장은 이 실장이 입양인 지원뿐 아니라 한인단체들의 재외동포청 사업 신청 과정에서도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실질적인 도움을 제공해 왔다고 밝혔다. 실제 여성회의 지원사업 신청 당시에도 사업 분야 설정과 서류 작성 등을 세심하게 조언해 다른 사업의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며, 오랜 경험과 뛰어난 행정력을 갖춘 이 실무관의 정년 연장을 검토해 줄 것을 요청했다.
박선영 프랑스 한글학교 협의회 회장도 이춘애 실장의 역할이 계속 이어지기를 바란다는 뜻을 전했다. 프랑스 한글학교 협의회는 2018년부터 입양 동포 캠프를 개최하며 입양 동포들이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배우고 한국과 지속적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지원해 왔다. 이 과정에서 이 실장은 DNA를 통한 친생부모 찾기와 국적 취득 등에 관한 설명회를 진행하며 실질적인 도움을 제공해 왔다. 박선영 회장은 “앞으로도 프랑스 입양동포들을 위해 이 실무관의 경험과 역할이 계속 이어지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파리 국립 기메 박물관 내 한식당 '한옥'의 이용경 대표는 이춘애 실장의 퇴직 소식에 “내년부터는 누가 이 일을 이어갈지 걱정됐다”며, 20년 넘게 한인 사회와 입양 동포를 위해 현장을 지켜온 경험과 역할을 대신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실장 개인이 아니라 입양 동포와 한인 사회를 위해서라도 계속 일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단순히 한 직원의 정년퇴직 문제가 아니다. 오랜 시간 입양인들과 직접 만나며 쌓아온 경험과 신뢰, 가족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축적된 노하우와 인적 네트워크가 함께 사라질 수 있다는 문제다. 특히 입양인의 뿌리 찾기는 서류만으로 해결되는 행정 업무가 아니라 언어와 문화, 복잡한 가족사와 상처를 이해하며 오랜 시간 관계를 이어가야 하는 일이다. 그런 만큼 후임자가 충분한 경험을 쌓고 업무를 안정적으로 이어받을 수 있을 때까지라도 이춘애 실장의 근무를 연장해 업무의 연속성을 유지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는 단순히 한 사람의 정년을 몇 년 늦추자는 차원이 아니라, 오랫동안 쌓아온 경험과 신뢰가 단절되지 않고 입양인 지원으로 계속 이어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으로, 보다 유연한 판단이 필요해 보인다.
<파리광장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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