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아줌마 단상] 프랑스 조력 사망법 통과에 나도 모르게 박수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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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중순, 차를 몰고 가다가 라디오에서 프랑스의 조력 사망법이 국회를 통과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찬성 291표, 반대 241표.” 프랑스 국회의장이 이로써 조력 사망법이 통과되었다고 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박수가 나왔다.
혼자 운전하고 있던 차 안에서 신호를 받을 때였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죽음을 쉽게 생각하는 것도, 조력 사망을 찬성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나도 이제 나이가 들어간다. 앞으로 10년, 20년이 지나면 내 건강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건강하게 나이 들어 어느 날 편안하게 생을 마칠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지만, 삶이라는 것이 어디 마음먹은 대로 되는가. 그런 생각을 하면 나는 가끔 두렵다.
그래서였던 것 같다. 그날 내가 박수를 친 것은 조력 사망 자체에 찬성해서라기보다, 만약 훗날 내가 정말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였을 때 ‘선택할 수 있는 길이 하나는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 선택을 실제로 하게 될지는 알 수 없다. 막상 그 순간이 오면 하루라도 더 살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고통스러워도 가족의 얼굴을 한 번 더 보고 싶을 수도 있고, 마지막까지 치료를 받으며 살아가기를 선택할 수도 있다. 그래도 선택하지 않는 것과 선택할 수 없는 것은 다르다. 내가 원한다면 끝까지 치료받으며 살아갈 수 있고, 법이 정한 엄격한 조건에 해당할 만큼 견디기 어려운 상황에 놓인다면 또 다른 선택을 생각해 볼 수도 있다는 것. 내게는 그 ‘선택의 여지’가 생겼다는 사실 자체가 이상하리만큼 안심이 됐다.
이번 여름 한국에 갔을 때 친구들에게 프랑스가 조력사망법을 통과시켰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랬더니 친구 하나가 웃으며 말했다: “그럼 우리도 그때 프랑스 가면 되겠네.”
우리는 웃었다.
물론 그렇게 간단한 이야기는 아니다. 프랑스에 간다고 누구나 조력 사망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법이 정한 거주 요건과 질환, 고통, 의사 능력 등 엄격한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하지만 친구의 농담을 들으며 문득 생각했다. 우리 나이가 이제 이런 농담을 할 나이가 되었구나.
젊었을 때 친구들과 만나면 사랑 이야기, 아이 이야기, 남편 이야기를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부모님 건강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고, 이제는 우리 자신의 노후와 병, 심지어 어떻게 죽음을 맞을 것인지까지 이야기한다.
프랑스 가톨릭계 강하게 반대
프랑스 가톨릭계에서는 조력 사망을 법적 권리로 인정하는 데 강하게 반대해 왔다. 죽음을 앞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죽음을 앞당길 수 있는 수단이 아니라 끝까지 곁을 지키는 돌봄과 충분한 완화의료라는 것이다. 특히 노인이나 장애인, 중증 환자들이 자신을 가족과 사회의 부담으로 여기게 되는 상황을 우려한다. 그 걱정 역시 충분히 이해한다.
누군가가 돈 때문에, 가족에게 미안해서, 돌봐줄 사람이 없어서 죽음을 선택하는 사회라면 그것은 결코 우리가 원하는 모습이 아닐 것이다. 그렇기에 조력 사망을 선택할 권리만큼이나 끝까지 제대로 치료받고 돌봄을 받을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그날 차 안에서 내가 박수를 친 이유는 여전히 단순하다. 나는 앞으로 얼마나 더 살지 모른다. 어떤 모습으로 늙어갈지도 모른다.
건강하게 오래 살다가 어느 날 잠들듯 생을 마감한다면 가장 좋겠다. 하지만 삶의 마지막이 반드시 그렇게 찾아오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래서 만약 언젠가 내가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아프고, 의학적으로도 더 이상 나아질 가능성이 없으며, 충분히 생각하고 또 생각한 끝에 다른 길을 원하게 된다면….
적어도 그때의 나에게 선택할 수 있는 길 하나쯤은 있다는 것… 선택할 수 있다고 해서 반드시 선택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선택할 수 있다는 것. 나이가 들어가는 내게는 그것만으로도 조금은 안심이 된다.
<파리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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