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아비뇽 페스티벌 가는 달
작성자 정보
- 최고관리자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 0 추천
- 목록
본문
장 빌라르와 제라르 필립이 함께 만든 ‘민중 극장’의 전설

« 르 시드(Le Cid) » 공연 중의 제라르 필립(Gérard Philipe). 1951년 아비뇽 페스티벌. 영화감독 아녜스 바르다(Agnès Varda) 사진. 출처- BNF 프랑스 국립 도서관.
© 아녜스 바르다 재단.
블로뉴에 사는 친구 티에리를 오랜만에 만났다. 2층에서 그의 아들이 뛰어 내려왔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이 다섯 살 소년의 이름은 아르튀르. 내가 « 오 ! 아르튀르. 너 알랭 드롱(Alain Delon)처럼 아주 잘생겼구나. » 라고 했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부모의 얼굴에는 썩소와 함께 검은 그림자가 내려앉아 있었다. 내가 뭘 잘못한 걸까 ? 티에리의 처 이자벨이 말했다. « 배우라면 제라르 필립(Gérard Philipe)이 잘생겼지. » 부부는 서로를 바라보며 웃음을 되찾았다. 휴우… 제라르 필립 ?
1947년, 연출가 장 빌라르(Jean Vilar)는 아비뇽 교황청 앞마당에서 대담한 실험을 시작한다. 고루한 극장 안에서 소수의 엘리트만 즐기던 연극을 광장으로 끌어내어 모두가 향유하는 축제로 만들겠다는 야심이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세계적 공연 성지인 아비뇽 페스티벌의 시작이다.
원대한 꿈에 불을 지핀 결정적 사건은 1951년, 당대 최고의 청춘스타 제라르 필립이 장 빌라르의 국립 민중 극장(TNP)에 합류하면서 일어난다. 당시 그는 영화 Le Diable au corps(육체의 악마, 1947)와 Le Rouge et le Noir(적과 흑, 1954)를 통해 전 유럽을 사로잡은 독보적인 스타였다. 영화 한 편으로 엄청난 부와 명예를 거머쥘 수 있었던 그가, 모든 기득권을 뒤로하고 장 빌라르의 « 민중에게 예술을 »이라는 신념에 동참하기 위해 아비뇽의 거친 돌벽 무대를 선택한 것이다.
제라르 필립은 장 빌라르의 연출 아래 코르네유(Pierre Corneille)의 고전 비극 « 르 시드(Le Cid) » 속 기사 로드리그가 되어 무대에 나타난다. 특별한 장비나 장치도 없는 야외 광장, 남불의 밤하늘 아래서 그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순간, 연극은 더 이상 상류층의 우아한 소일거리가 아니었다. 그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대사들은 파리의 세련된 극장이 아닌, 아비뇽의 밤공기를 찢고 관객의 심장을 살아 꿈틀거리게 했다. 이렇게 장 빌라르가 설계하고 제라르 필립이 몸소 실천한 이 무대는 노동자와 학생, 그리고 평범한 시민들이 함께 숨 쉬며 즐기는 진정한 «민중 극장 »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다.
장 빌라르는 연극이 시민들에게 도로나 공원처럼 당연히 공급되어야 할 « 공공 서비스 »여야 한다고 믿었다. 제라르 필립은 이러한 장 빌라르의 철학을 완성하는 가장 강력한 동지였다. 그는 스스로 스타이길 거부하고, 장 빌라르가 추구한 예술적 공공성을 위해 헌신하며 아비뇽의 밤을 공연예술의 전설로 만드는 작업을 겸손하지만 아름답게 완수하였다.
아비뇽 교황청의 돌벽은 장 빌라르의 확고한 철학과 제라르 필립의 뜨거웠던 숨결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아비뇽 페스티벌은 오늘날에도 이들의 « 민중 극장 » 정신을 계승하고 있기에, 매년 공식 프로그램 중에는 무료로 개방되는 토론회와 전시, 혹은 특정 공연들이 반드시 포함된다. 무대예술은 화려한 성벽 안에 갇혀 있을 때가 아니라, 광장의 거친 바람 속에서 평범한 이들의 눈동자와 마주할 때 비로소 찬란한 생명력을 얻는 것이라 믿었던 제라르 필립과 개척자들.
나는 올해 무성영화 상영극(Le Spectacle Cinématographique par le Bonimenteur Coréen)의 변사로 참가하기 위해 7월 2일 아비뇽행 기차에 올랐다. 7월 3일과 4일, 이틀간 공연을 펼치며 2026년 아비뇽 페스티벌의 밤하늘 아래에서 배우 제라르 필립이 남긴 소중한 예술 정신(에스프리)을 관객들과 함께 나누는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
<강창일>

파리 8대학 공연예술연구소(Scène du monde, créations et savoirs critiques) 및 파리 3대학 영화연구소(IRCAV) 연구원이며, 국립극장과 예술의전당 등에 무대작품을 올리는 극작가이자 연출가이다. 더불어 촬영, 편집, 시나리오 및 감독 활동을 겸하는 영화인으로서 파리대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고, 주요 저서로 ≪한국영화의 시작 (Les Débuts du Cinéma en Corée)≫과 ≪현대한국영화: 기생충의 전야 (Le Cinéma Coréen Contemporain : À l’Aube de Parasite)≫가 있다. 프랑스 방방곡곡을 누비며 강연회와 관객과의 대화로 현지 주민들을 만나고 있으며, ≪조선신파변사활동사진극≫이라는 이름의 무성영화공연에서 변사로 활동 중이다.
관련자료
-
다음
-
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