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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창일의 한국 영화 이야기] 연재(3) 사라진 필름 속에서 되살아난 나운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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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적 동행, 조선 영화의 두 별이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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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이경손 감독의 초상화. TMDB(The Movie Database) 프랑스어권 아카이브 소장 원본을 바탕으로 고해상도 디지털 보정 작업을 거친 이미지


운명적 조우: 무대에서 스크린으로 던진 청춘

오늘날 세계를 매료시킨 한국 영화의 도도한 줄기는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 그 중에는 1923년부터 1935년까지 조선 영화계에서 가장 뜨겁게 숨 쉬었던 두 명의 친구이자 경쟁자 였던 영화인, 이경손과 나운규가 있다. 흥미롭게도 두 사람 모두 외국의 선진 기술에 기대지 않고 오롯이 조선 땅에서 영화를 배우고 깨친 토박이 시네아스트들이다.


신학을 공부하던 청년, 서구 예술에 눈을 뜨다

이야기의 플래시는 먼저 1905년생 청년 이경손에게 향한다. 삼일운동의 함성이 온 땅을 뒤흔들던 1919년, 서울에서 신학을 공부하던 이 10대 소년은 뜻밖에도 서구의 깊은 철학과 문학 세계에 마음을 통째로 빼앗긴다. 종교적 구도자를 꿈꾸던 소년의 시선이 예술이라는 더 넓은 바다를 향해 움직인 것이다.

결국 이경손은 무대 위에서 자신의 열정을 터뜨리기로 결심한다. 그의 나이 고작 열여덟이던 1923년, 친구들을 모아 «무대예술연구회»라는 이름의 대담한 극단을 세상에 선보인다. 이경손은 이 실험적인 무대 위에서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과 톨스토이의 «부활» 같은 굵직한 서구의 고전 명작들을 직접 연출하며 서구의 문화를 한반도 관객에게 자연스럽게 소개하는 새로운 예술 감각을 유감없이 증명해 낸다.


촬영장 한구석에서 발견한 불세출의 거인

이경손의 시선은 신대륙인 '영화'로 이동한다. 1924년, 그는 당대 최고의 연출가들이던 왕필열 감독의 «해의 비곡»(1924년 11월 12일 개봉)과 윤백남 감독의 «운영전»(1925년 1월 14일 개봉) 현장에 조감독으로 전격 합류하며 본격적인 영화 인생을 시작한다. 그리고 바로 이 눈코 뜰 새 없이 돌아가던 촬영장 한구석에서, 이경손의 날카로운 눈에 들어온 투박하지만 강렬한 눈빛의 한 무명 배우가 있다. 그가 바로 훗날 조선 영화의 상징이 되는 나운규이다.

이경손은 나운규의 숨은 재능을 단박에 알아채고 «운영전»의 가마꾼이라는 작은 배역을 선물한다. 이 짧은 등장이 바로 나운규라는 불세출의 거인이 한국 영화사에 첫발을 내딛는 역사적인 순간이 된다. 두 사람의 인연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1925년, 마침내 메가폰을 잡고 당당히 감독으로 데뷔한 이경손은 자신이 연출하는 첫 영화의 당당한 단독 주연 자리를 다름 아닌 은인 같은 친구, 나운규에게 선물하며 화답한다. 조감독과 단역 배우로 만난 두 청년이 단 1년 만에 감독과 주연 배우로 마주 서게 된 것이다.


<강창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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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8대학 박사 및 객원연구원. 무성영화의 변사.프랑스 방방 곡곡을 누비며 연극영화를 통하여 한국의 문화를 알리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 한국 영화의 시작(Les Débuts du Cinéma en Corée, 2021) »과 « 현대 한국 영화 : 기생충의 서막(Le Cinéma Coréen Contemporain : A l'Aube de Parasite, 2023) »이 있다. SCÈNE ET IMAGE  회원으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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