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 [화가 아틀리에 탐방] 이원 작가, 프랙탈로 펼쳐 보이는 ‘보이지 않는 구조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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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6-03-31 06:18 조회 503 댓글 0본문

이원 작가(사진: 이원 작가 제공)
예술은 언어를 넘어서는 또 하나의 소통의 방식이다. 인간의 말과 글로는 온전히 담아낼 수 없는 감각과 경험을 전달하는 것, 그것이 예술이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많은 예술가들이 이 한계를 넘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만의 표현 방식을 탐구해 왔다. 그 과정은 곧 내면을 향한 사유의 여정이기도 하다. 이러한 여정을 거친 작품 속에는 작가가 발견한 질문과 사유의 흔적이 담기고, 관객은 그 안에서 또 다른 의미와 감각을 발견하게 된다.
작가 이원(본명 이혜원)은 이 사유의 과정 속에서 프랙탈 이론(Fractal Theory)에 주목한다. 프랙탈은 자연과 수학 속에서 발견되는 구조로, 작은 부분이 전체와 닮아 있는 자기유사성(self-similarity)을 특징으로 한다. 강줄기, 산맥, 번개처럼 자연에서 발견되는 이러한 패턴은 겉보기에는 불규칙하지만, 그 안에는 일정한 질서와 구조가 존재한다. 작가는 인간의 삶과 감정 역시 이와 닮아 있다고 말한다. 완전히 통제할 수 없는 삶의 흐름 속에서도 반복과 얽힘을 통해 하나의 구조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이원은 이러한 원리를 시각 언어로 구현한다. 한지 위로 전기를 흘려 번개처럼 퍼져 나가는 흔적을 남기면서, 우연과 질서가 동시에 드러난다. 따뜻한 한지의 질감과 강렬한 패턴이 겹쳐 자연과 인간, 질서와 우연이 맞물리는 ‘프랙탈적 풍경’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작가에게 프랙탈은 과학적 개념이 아니라 삶과 감정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하나의 시각적 언어다. 그의 작업은 반복과 자기 유사성의 구조 속에서 세계를 바라보는 또 다른 방식과 경험을 제시한다. 세계의 프렉탈적 질서를 예술 언어로 번역하는 작가 이원의 작업 세계를 좀 더 자세히 들어보았다.
-작품에서 한국화적인 화풍이 짙게 느껴진다. 작가의 커리어가 궁금하다.
2008년 경희대학교 한국화과를 졸업했다. 이후 새로운 분야를 경험해 보고 싶어 일본으로 유학해 주얼리를 공부했고, 회사원으로 약 8년 정도 생활했다. 프랑스에는 어학 공부를 하면서, 평소 관심 있던 유럽의 예술과 문화를 통해 지친 마음을 위로 받고자 오게 됐다. 좋아하던 예술가들의 작품을 직접 접하면서 다시 작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후 예술가 비자를 받아 프랑스에 정착했다.
-새로운 것을 배우기 위해 일본유학을 떠났다는 점이 흥미롭다.
새로운 모험을 해보고 싶었고, 이전에 다루지 않았던 재료를 배우고 싶었다. 다만 해외 생활이 처음이었고 비교적 신중한 성격이라 가까운 일본을 선택했다. 2009년 일본 도쿄 시부야에 있는 히코미즈노 주얼리 학교에서 실버 주얼리를 공부했다. 이후 일본 내 알려진 오더메이드 주얼리 회사에 취직했지만, 바쁜 업무로 작품 활동은 병행하기 어려웠다. 그렇게 8년간의 일본 생활을 마치고 2017년 초 한국으로 돌아왔다. 일본 생활 후 휴식이 필요했고, 평소 관심있던 유럽의 예술과 문화를 경험하며, 프랑스어도 배우고 싶은 마음에 2017년 9월에 프랑스로 떠났다.
-전반적으로 작품의 분위기와 작업 세계가 다양해 보인다. 초기 작업이 궁금하다.
초기에는 개인적인 서사를 담은 구상에 가까운 작업을 했다. 한지를 찢어 붙이고 그 위에 일기처럼 글을 쓰는 형식이었고, 색은 오일 파스텔을 사용했다. 캔버스에는 주로 나와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작품이 남아 있는 동안 다른 사람들이 이 글을 읽고 우리를 기억해 준다면, 우리는 죽은 이후에도 그 기억 속에서 계속 살아 있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당시 나는 기억이 사라지면 존재 자체도 사라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다. 시간이 지나며 이러한 감정이 소통의 단절에 대한 내재적 불안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게 됐다. 결국 나의 작업은 사람들과 어떤 방식으로든 연결되고자 하는 시도의 일부였다.
-새로운 재료나 기법에 대한 시도를 많이 하나?
나에게 작업의 변화는 그 시간 자체가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관객 입장에서는 “왜 이 작가는 매년 작업이 바뀌나”라고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실제로 표현 방식과 주제 등 여러 측면에서 1년에 한 번씩 변화가 있었다. 예전에는 한지를 찢어 붙이거나 오일 파스텔, 안료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했다. 이후 관객에게 생각을 더 명확하게 전달하는 방법에 집중하면서 재료와 표현 방식이 달라졌다. 이후 모스부호(점과 선으로 글자를 표현하는 신호 체계) 작업을 거쳐 ‘보편적인 인간의 감정’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졌고, 2024년 프랙탈 이론에 관심을 가지면서 작업의 방향과 스타일도 확연히 정리되기 시작했다.

흔적의 순환(Le cycle des traces) 2026, 캔버스 위 한지에 안료, 162 x 130 cm
작품 설명) 삶과 죽음은 단절이 아니라 하나의 흐름 속에 놓인 순간들이다. 사라진 삶의 흔적은 다른 존재들 속에서 계속 이어지며 서로를 연결한다.
이렇게 각자의 삶은 모여 하나의 더 큰 인간의 이야기를 형성한다.(작품 사진 및 설명 이원 작가 제공)
-‘보편적인 인간의 감정’이란 무엇을 말하나 ?
‘보편적인 인간의 감정’을 다루는 작업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관찰해 보니 인간의 감정 흐름은 대체로 비슷하지만, 세부는 조금씩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지 고민하던 중 2024년쯤 수학자 브누와 망델브로(Benoit Mandelbrot)가 정립한 프랙탈 이론(Fractal Theory)을 알게 됐다. 강줄기나 번개처럼 자연에서 반복되며 확장되는 패턴을 설명하는 개념으로, 인간의 삶과 감정 역시 자연의 일부이기에 완전히 통제할 수 없다는 생각과 맞닿았다. 삶과 감정은 반복되지만 세부는 다르다는 점에서 프랙탈의 자기유사성 개념과 닮아 있다고 느꼈고, 현재의 작업은 바로 그 지점에서 출발했다.
-작업의 모티브는 어디서 얻었나?
인간사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 때 느껴지는 에너지가 매우 강렬하다고 생각한다. 그 에너지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 한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었다. 아프리카 하늘에서 번개가 치는 장면을 보는 순간 가슴이 설렜고, ‘저거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번개는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힘을 보여주며, 삶과 죽음의 경계를 떠올리게 했다. 삶과 감정 역시 순간적으로 반응하고 변화하며 예측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번개 패턴은 자연의 패턴이자 프랙탈의 대표적인 사례이기도 하다.
-번개 패턴을 작품에서 어떻게 형상화하는가?
번개는 본질적으로 전류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가장 가까이서 이를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전기라고 판단했다. 전기가 크게 뭉쳐 폭발할 때 비로소 번개가 되기 때문이다. 즉, 작품 속 패턴들은 머리 속에서 나온 이미지가 아니다. 전류가 흐른 본연의 흔적이 담긴 한지 위에 세필과 안료로 마무리하는 방식으로 작업한다.
-프랙탈 이론과 작업 방식은 어떻게 연결되나 ?
프랙탈 이론에서 얻은 아이디어를 현실화하는 작업은 쉽지 않았다. 초창기에는 인두로 전류의 흐름과 흔적을 그대로 본떠 콜라주를 만들었다. 이후 한지를 태우고 겹겹이 쌓아 올리며 다양한 색 한지를 사용했다. 작업을 이어가면서 내면의 생각이 정리되었고, 표현 방식과 재료도 많이 연구했다. 그 과정에서 색은 점차 단색으로 좁혀졌다. 여러 재료를 써보고 연구하며 버리는 과정을 거치면서 점점 내 방식으로 개량되었고, 이제 작업 방향의 실마리를 발견한 느낌이다. 하지만 아직 작가로서 갈 길이 멀고 더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작품에서 색이 이전보다 절제된 느낌을 주는데, 색을 다루는 방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보편적인 소통’을 생각하면서 색의 사용에 점점 제한을 두기 시작했다. 나는 색도 하나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한 작품 안에 색이 너무 다양하면 너무 많은 이야기가 들어가게 된다고 느꼈다. 만약 작업이 2020년의 방식에 머물러 있었다면 색을 많이 사용하는 것도 괜찮았을 것이다. 당시 작업은 하나하나가 나의 이야기였고, 지극히 개인적인 서사를 담고 있었기 때문에 색 자체가 그것을 상징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개인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어떤 흐름’,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것’, 그리고 ‘보편적인 인간의 감정과 삶과의 연결’이다. 그래서 색을 절제하려는 시도를 하게 됐다. 결국, 큰 흐름에서 보면 색을 제한하는 것이 작업의 의도와 더 맞다고 생각한다.
-작품에서 파란색이 특히 눈에 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초기 작업에서는 다양한 색을 사용했지만, 색이 들어가면 작품이 점점 개인적이고 강렬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색을 통일하는 방향을 고민했고, 그 과정에서 파란색을 선택하게 되었다. 단순한 색채 선택이 아니라 생명력 자체를 상징하며, 인간과 자연이 하나의 동일한 근원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드러내고자 했다. 또 다른 이유는 자연의 순환과 관련이 있다. 나는 자연의 순환에서 물이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작품 속 전기 패턴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흐름을 보여주며, 자연의 형상을 만들어 내고, 그 흐름은 다시 물이라는 근원적 존재와 이어진다. 만약 그 이미지를 임의로 선택한 색으로 채운다면, 그것 역시 내가 흐름을 통제하는 것이 되는 셈이다. 그래서 자연과 물을 상징하는 파란색을 사용하게 되었고, 그것이 지금 작업의 중요한 색이 되었다.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예술가로서, 양국의 예술 환경이나 특징에 대해 느낀 점이 있나?
국경의 경계가 많이 흐려진 시대라 국가별 차이는 크지 않다. 갤러리는 각자의 가치에 맞는 작가를 찾기 때문에 본질적인 차이는 크지 않다. 유럽, 특히 파리는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모여 작품을 보고 배우거나, 작품을 선보일 기회가 상대적으로 많다. 한국 역시 다양한 예술 활동과 전시, 지원이 활발하며 창의적인 시도가 풍부하다. 작가가 직접 움직이고 도전할 수 있는 환경과 지원 체계가 잘 갖춰져 있어 상대적으로 기회를 찾기 용이하다. 결국 어디에서든 작가는 스스로 움직여 자신에게 맞는 기회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작가라는 쉽지 않은 길을 선택했다. 작가로서의 고민은 무엇인가?
작가로 사는 삶이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현실적인 문제와 기회 문제는 늘 고민하게 된다. 하지만 부모님이 항상 지원하고 응원해 주시고, 주변에도 감사한 분들이 많다. 또, 작가라면 누구나 자신의 재능과 작업에 대해 끊임없이 되짚어 보게 된다. 이런 고민은 아마 죽는 날까지 계속 따라다닐 것이다. 나는 예술가의 생명력이 현실에 안주하거나 움직이지 않는 순간 끝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고민하고 사고하며 나아가는 것이 바로 예술의 원동력이라고 본다. 이 원동력이 끊기기 않도록 잘 헤쳐 나가고 싶다.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
대학 졸업 후 작가로서 경력이 단절된 시기가 있었다. 프랑스에 와서 어학을 하고 작업을 다시 시작한 지 이제 6년 정도 됐다. 본격적으로 작업을 시작한 2020년부터 보면 다른 작가들에 비해 늦은 편이다. 처음 4년은 대학을 다니며 자신만의 길과 표현 방식을 찾아 헤매는 과정과 비슷했다. 2020년부터 2024년까지 자신이 해야 할 작업을 발견하고, 이제는 그 기반 위에서 2년째 발전시키고 있다. 앞으로는 대중이 내 작품을 봤을 때 메시지를 단번에 이해할 수 있는 작업을 하고 싶다. 또한 올해는 가능한 한 많은 작품을 만들고 다양한 전시에 참여하는 것이 목표다.
<현 경 기자 dongsimjeong@gmail.com>
흔적의 순환(Le cycle des traces) 2026, 캔버스 위 한지에 안료, 162 x 130 cm
작품 설명) 삶과 죽음은 단절이 아니라 하나의 흐름 속에 놓인 순간들이다. 사라진 삶의 흔적은 다른 존재들 속에서 계속 이어지며 서로를 연결한다. 이렇게 각자의 삶은 모여 하나의 더 큰 인간의 이야기를 형성한다. (작품 사진 및 설명 © 작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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