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칼럼 [김영필 교수의 세상 읽기] 철학은 요리다: ‘흑백요리사’로 읽는 인간 이해의 역사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6-03-31 04:46 조회 571 댓글 0

본문

7fb2bd65478462259ba42a0a5b84e13d_1774899820_6271.png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Raphael의 대표작 '아테네 학당'의 일부 장면


요즘 TV 에서 '흑백요리사'가 인기다. 유명셰프와 무명의 숨은 고수 셰프의 요리전쟁이다. 주제를 놓고 요리를 만든다. 그리곤 맛평가를 받는다. 철학도 요리다. 그것도 흑백요리 대결이다. 고대는 그리스 아테네 귀족 출신 백수저 플라톤과 그리스 북쪽 변방 서민 출신 흑수저 아리스토텔레스의 대결이다. 요리 주제는 '인간이 무엇인가'다. 그 주제 하에 마음과 신체란 재료로 나름의 요리를 해왔다.


마음과 신체의 관계를 각자의 레시피로 잘 요리하는 게 중요하다. 당대 수학자로 명성을 날리고 스웨덴의 크리스티나 여왕의 초청까지 받았던 백수저(아무것도 안 해도 먹고사는 사람이라는 뜻) 데카르트와, 국가와 민족으로부터 쫒겨나 렌즈기능공으로 어렵게 살다가 44세로 죽은 흑수저(경제적으로 어려운 집안에서 태어난 사람이란 뜻) 스피노자의 요리 대결이다. 양자 모두 근대 합리론자다. 레시피가 수학적 방법이라 그들의 요리는 맛이 없다. 논리적일수록 감성적 풍미는 떨어진다. 데카르트는 마음과 신체를 별개로 보고 이 둘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요리한다. 스피노자는 상호작용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마음이 불안의 정서를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다. 그럴 수 있다고 한 데카르트를 조롱한다. 정서는 더 강한 정서로만 통제할 수 있다. 정서는 신체의 변용이라 마음은 관여할 수 없다. 


신체와 마음을 별개의 재료로 요리한 근대와 다르게 현대철학은 '몸'이란 새 재료로 요리한다. 몸은 마음의 확장이다. 몸은 나 자신이다. 몸을 재료로 현상학이란 레시피로 요리한 현대의 대표적인 요리사가 에드문트 후설과 매를로 퐁티다. 후설은 유대계 독일인이다. 제자 하이데거로부터 인종차별을 받은 흑수저다. 메를로 퐁티는 프랑스 본토 출신의 백수저다. 둘 다 몸을 재료로 요리했지만 후설의 요리는 독일 빵처럼 시큼하고 퍽퍽하며 딱딱하다. 그러나 쉽다보면 구수하다. 독일철학이 그렇다. 칸트나 헤겔철학에 들어가기는 어려워도 쉽게 빠져나올 수 없는 이유다.

반면 메를로 퐁티 요리는 프랑스의 감성적 풍미가 돋보인다. 그의 철학이 예술과 잘 어울리는 이유다. 요리가 미학적이다. 맛깔스럽다. 퐁티가 보기엔 후설은 여전히 헤겔의 의식철학에 머물고 있다. 후설의 주 재료는 여전히 의식이라고 비판한다. 퐁티는 의식을 버리고 몸 맛집을 차렸다.


차이와 다양성을 레시피로 백과 흑의 경계를 허문 철학자가 질 들뢰즈다. 우선 그는 몸이란 재료를 버린다. 몸 역시 유기적으로 조정된 것으로 자유를 상실한 재료다. 그는 몸 대신 욕망이라는 참신한 재료를 사용한다. 부족한 것을 채우는 욕망이 아니다. 한 곳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려는 욕망이다. 생성의 힘이다. 그에겐 정해진 레시피가 없다. 지기만의 특이성을 생산하는 과정이 레시피다. 몸으로 코드화 되기 전 무엇이든 다 될 수 있는 재료로 요리한다. 그 재료는 '알' 혹은 '배아'다. 이는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가능성의 상태를 의미한다.


결국 철학은 단순한 이론의 집합이 아니라,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다양한 ‘요리법’의 역사라 할 수 있다. 시대에 따라 재료는 달라지고, 조리 방식도 변해왔지만, 그 중심에는 늘 인간에 대한 질문이 놓여 있다.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철학자들의 ‘요리 대결’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다.


<김영필 교수>

7fb2bd65478462259ba42a0a5b84e13d_1774899973_263.jpg

아시아대학교 교수와 대구교육대학교 연구교수 역임. 철학박사(전공 서양철학 중 현상학). 저서로는 ‘여행, 인문에 담다(2020)’ , ‘욕망으로 성찰한 조선의 공간(2021: 한국출판문화진흥원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 ‘신천에 철학 카페를 짓다(2023)’ 등이 있다.

추천0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