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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아틀리에 탐방] « 공간의 언어 »를 그리는 드미래(Demilé)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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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은 어떻게 회화가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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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미래 작가


공간(空間)은 비어 있는 사이를 뜻하지만, 결코 아무것도 없는 상태는 아니다. 그것은 사물과 사물 사이에 존재하는 빈 자리이며, 동시에 존재가 가능해지는 조건이다. 이런 맥락에서 예술가에게 공간이란 일종의 시제(視際)와 같다. 예술에서 공간은 채워야 할 대상이 아니라, 시선과 의미가 성립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공간의 언어(Langage de l’espace)’를 주제로 끊임없는 철학적 사유와 작업적 성찰을 시도하는 작가 드미래의 시선이 머무는 공간은 건축가적 시선과 맞닿아 있다, 그의 작업에는 ‘사람의 경험’과 ‘인간 행위’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다양한 형상의 돌들이 수직 구조물의 틈새 공간을 채우는 ‘마케트(maquette) 드로잉’은 이를 분명히 드러낸다. 회화 작가인 드미래에게 마케트(maquette)를 만드는 과정은 작업의 본질에 가깝다. 이 입체물은 공간에 대한 사유의 결과라기 보다, 사유가 형성되는 과정을 면면히 담아내는 장치이기 때문이다. 드미래는 이 과정을 카메라 렌즈를 통해 다시 한 번 ‘공간의 불확정성과 구조가 어떻게 존재의 조건을 드러내는지’ 질문한다. 이 지난한 과정을 거쳐 그의 작업은 하나의 완결된 회화 작품으로 탄생한다. 마케트의 이미지를 고스란히 담아낸 그의 회화 작품은 우울하고 암울한 도시 공간을 단순히 시각적 인상으로 소비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관람자로 하여금 자신의 위치와 시간, 그리고 현대 사회가 놓인 맥락을 사유하게 만드는 장치로 작동한다. 이는 도시 공간에 내재한 비가시적 힘, 즉 구조와 흐름, 여백(공간)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되며, ‘이는 결국 어디에서 존재하는가?’ 라는 근본적인 질문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도시적 삶의 조건을 회화적으로 재해석하며 현대인의 위치와 의미를 치열하게 사유하는 작가 드미래를, 이른 아침 커피향이 진하게 베인 어느 조그만 카페에서 만났다.   


-먼저, ‘드미래’라는 이름이 특이하다. 간단한 소개를 부탁한다.

본명은 ‘신미래’다. ‘미래’라는 이름은 예전에는 흔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너무 많아졌다. 고유한 이름이 필요하다고 느꼈고, 프랑스를 기반으로 활동하다 보니 정체성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프랑스어로 ‘~부터’라는 뜻을 가진 전치사 de를 붙여, ‘모든 창작은 나로부터 시작된다’는 의미의 이름을 만들었다. ‘미래’의 표기도 알파벳을 조금 달리해 Milé로 쓴다. 프랑스인들이 쉽게 기억하고 발음해 주어 만족하고 있다.


-간략하게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순수 작품 활동은 2022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32세에 프랑스로 유학을 와서, 마르세유 국립예술학교(École supérieure d’art et de design Marseille-Méditerranée)를 졸업했다. 이후 파리 1대학 판테옹-소르본(Université Paris 1 Panthéon-Sorbonne)에서 2021년 말 석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을 떠나기 전까지는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했다.


-이력을 보니 일러스트레이터로서의 경력이 화려하다. 여러 브랜드 및 기업, 아티스트와의 협업도 많고, 수상 경력도 다양하다. 안정적인 직업을 그만두고 순수 작가의 길을 선택한 점이 인상적인데,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쌍둥이 언니인 마이자 작가 역시 그림을 그린다. 한국에서 일러스트레이터로 함께 활동했고, 유학도 같이 와 마르세유 보자르에서 학업을 이어갔다.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하던 당시, 언니와 함께 아트페어 공모전 작가로 선정되어 예술의전당에서 전시를 한 적도 있다. 두 사람의 평면 작업을 나란히 배치했는데, 그 사이에서 우리의 작업을 한눈에 보여 줄 수 있는 하나의 조형물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를 어떻게 구현해야 할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때 다시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내가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작업은 현대미술이 아닐까 하는 깨달음이 들었다. 나는 한 공간 안에서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동하는 방식을 더 잘 표현하고 싶었다. 그런 고민 끝에 유학을 선택하게 되었다.


-작품을 관통하는 큰 주제는 무엇인가?

나의 작업 세계는 크게 ‘공간과 인간’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한다. 초창기부터 인간과 그들이 만들어낸 공간, 즉 환경에 주목하며 꾸준히 작업해 오고 있다.


-공간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나?

프랑스로 오면서부터다. 막연히 유학을 온다는 생각으로 한국을 떠났지만, 실제로 공간이 바뀌자 나의 정체성과 삶의 방향까지 달라지는 경험을 했다. 그 과정을 통해 공간과 인간은 분리될 수 없을 만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체감했고, 그때부터 공간에 대한 관심이 작업의 출발점이 되었다.


-그 관심이 실제 작업으로는 어떻게 구체화되었나?

한국에서 태어나 성장했기 때문에 작업 초기에는 자연스럽게 한국의 도시와 개인적인 공간에서 출발했다. 특히 반지하와 같이 소외된 공간에 주목했는데, 프랑스에서는 이러한 주거 환경 자체가 낯설게 받아들여졌다. 이 경험을 통해 내가 당연하게 여겼던 공간이 사실은 문화와 역사, 삶의 방식이 만들어낸 특수한 결과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이후 공간을 단순한 배경이 아닌, 한 사회의 가치관과 정체성을 내포한 구조로 바라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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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새>, 2022. 캔버스에 유채, 110 x 148 cm,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소장. 

작품설명 : 화면 속 사방으로 늘어선 구조물들은 공간의 개방성을 한정한다. 그 사이 끼인 듯 놓여있는 돌들은 도시 밀집 속 세밀화 된 개인의 공간을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그렇다면 반지하와 관련된 작업은 현재도 이어지고 있는가? 현재 작업에서 가장 중요하게 보고 있는 지점은 무엇인가?

반지하에 대한 이야기는 작업 초기에 집중했던 주제다. 반지하는 내가 서 있는 땅 아래에 존재하며, 햇볕이나 안전 같은 기본적인 조건에서 배제된 공간으로, 인간의 거주 환경이 어떻게 불균등하게 구성되는지를 드러내는 장소였다.  현재는 특정 공간의 사례보다는 ‘공간의 구조 자체’에 더 집중한다. 구조 안에는 역사, 삶의 방식, 가치관 등 앞서 이야기한 모든 요소가 이미 내포되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나는 이를 ‘공간의 언어’라고 부르며, 도시를 탐색하고 산책하는 과정 속에서 조금씩 그 (공간의) 언어를 이해해 나가는 작가라고 할 수 있다.

초기에는 개인적인 공간에 관심이 많았지만, 점차 범위를 확장해 대중적인 도시 환경을 작업의 주 무대로 삼고 있다. 내가 태어나고 성장한 도시에서의 경험이 자연스럽게 환경에 대한 주제로 이어졌고, 지금의 작업을 감상할 때는 개별 공간의 서사보다는, 그 공간이 어떤 구조로 형성되어 있는지를 주의 깊게 봐주면 좋겠다. 이 도시 구조와 ‘공간의 언어’를 주의 깊게 읽기를 바란다.


-이러한 구조에 대한 관심은 작업 방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제 그림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구조, 부피, 밀도감’이다. 때로는 실제 건물에서 이러한 구조를 차용하기도 하고, 이를 통해 도시의 밀집화와 개인이 향유할 수 없는 환경 같은 사회적 현상을 작품에 녹여낸다. 예를 들어, ‘사이에 놓여있기’ 시리즈의 첫 작품에서는 도시 밀집화를 극적으로 보여주고 싶어 한국의 쪽방이나 고시원을 참고했다. 일반적인 방 사이즈가 180cm×120cm 정도인데, 가장 작은 고시원의 경우 180cm×160cm 정도라고 한다. 나는 이 방의 구조를 마케트 구조로 재해석한 뒤, 캔버스 회화 작업을 진행한다. 캔버스 위에서 쪽방을 마주보는 경험을 재현하고자 한 것이다.


-작업과정이 복잡해보인다. 작업 특징은 무엇인가?

작업 과정의 특징은 마켓을 만들고, 그것을 다양한 장면으로 촬영하는 것이다. 그 중 주제에 맞는 사진을 선택해 캔버스에 그대로 옮겨 그린다. 이렇게 하면 회화 작품과 동일한 사진이 존재하게 된다. 나에게 마켓은 크로키나 데생과 같은 역할을 한다. 즉, 작품의 최종 완성본은 회화 작품이지만, 사진을 토대로 재현한다고 할 수 있다. 바꿔 말하면, 사진을 통해 구조와 장면을 다시금 잡아내는 과정이 핵심이라고도 할 수 있다.


-작업 방식이 독특하다. 특히, 마켓의 완성도가 하나의 작품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뛰어난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

나는 마케트 자체를 작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페인팅 작업에 최적화된 사람이며, 회화로 옮길 때 내 장점이 확실하게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특히, 재현 과정에서 나만의 시각과 해석으로 구조를 재구성하게 되고, 이를 페인팅으로 옮기는 순간 또 다른 창작물이 탄생한다고 말할 수 있다. 다만 최근에는 작업 과정을 관객과 공유하기 위해, 마케트나나 드로잉 모형을 전시에 함께 보여주기도 한다.


-회화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회화 작업에 이르기까지 과정이 상당히 다층적이다. 이런 과정을 고수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 또, 이 과정이 회화 작업에 어떤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나 ?

작업 방식은 상당히 아날로그적이어서 평면 작업이지만, 상대적으로 과정이 복잡하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편이다. 나는 마치 장인처럼 마케트의 모든 요소를 하나하나 손으로 만드는 과정을 거치면서, 구조에 대해 더 깊이 몰입하고 소통하는 느낌을 받는다. 다른 회화 작가들이 데생을 통해 기초적인 입체감, 화면 구성, 회화적 요소를 잡아가듯, 나는 마케트를 만드는 과정에서 볼륨감, 빛의 표현, 감정적 디테일까지 잡아간다. 마케트 제작은 나에게 회화 작업을 완성하기 위한 최적화된 방법이다.


-작품에 돌이 많이 등장한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돌은 자연적인 존재인 사람을 상징한다. 사람은 탄생부터 죽음까지 그 자체가 자연스러운 것이고 자연스럽게 살아간다. 그 모습이 자연과 닮아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도시라는 인위적이고 인공적인 공간 속에서 그렇게 자연스러운 인간을 닮은 것을 찾고 싶었고, 나에게 그것이 돌이었다. 환경에 따라 풍화작용을 겪으며 모양이 깎이고 변하는 모습이 인간과 닮았다고 느꼈다. 특히 프랑스에서 나 자신도 많은 변화를 겪으며 정체성이 흔들린 경험과 돌의 모습이 닮았다고 생각해 선택했다.


-돌은 수집한 것인가?

작업에 맞는 돌을 직접 수집하고, 점토로 하나씩 만들어 원하는 형태로 깎는 과정을 거친다. 물론 기존 돌을 그대로 사용할 수도 있지만, 이미 다른 환경에서 형성된 것이기 때문에 내 작업에는 적절하지 않다.


-요즘은 어떤 작품을 하고 있나?

회화 작업에서 점차 조형 작업으로 확장하고 있다. 회화는 색, 구도, 붓터치 등을 통해 작가의 생각을 보여주지만, 조형은 좀 더 직관적인 느낌을 준다. 시멘트, 철판, 점토, 세라믹 돌 등 다양한 재료는 그 자체의 물성과 부피감, 질감을 통해 작가의 의도와 개념을 직접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는 데 얼마나 걸리나?

회화 작품의 경우, 마케트 제작부터 약 한 달 반 정도 소요된다.


-하루에 어느 정도 작업하나?

적어도 6~7시간 정도 작업하려고 한다.


-최근 소식이나 전시 계획이 있나?

미림아트 갤러리 공모전에 당선되어, 오는 5월 20일 ~ 31일까지 인사동 미림아트 갤러리에서  « 사이음 »이란 주제로 개인전을 개최한다. 


전시명 : 사이음

장소 : 미림아트갤러리

주소 :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길 11-1(인사동 147) 미림아트센터 3층

기간 : 2026년 5월 20일 ~5월 31일


 <현 경 기자 dongsimjeo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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