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김영필 교수의 세상 읽기] 자유는 필연을 인식할 때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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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6-02-17 03:01 조회 532 댓글 0본문

초코비치와 이탈리아의 무세티의 경기를 생방송으로 보고 있다. 현재 2세트 네 번째 게임이 진행 중이다. 1세트는 6대 4로 무세티가 가져갔다. 2세트 역시 3대 1로 무세티가 앞서고 있다. 지금까지의 상대 전적은 9대 1. 조코비치가 압도적으로 우세했다.
그런데 오늘은 다르다. 오늘 조코비치가 밀리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언포스드 에러의 증가다. 상대의 강한 압박이 없는 상황에서도 범하는 실수가 이어지며 흐름을 내줬다. 반면, 자신의 힘으로 점수를 만들어내는 위너의 수는 기대에 못 미친다.
결국 승부의 본질은 단순하다. 위너는 많아야 하고, 실수는 줄어야 한다. 하지만 경기는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누군들 위너 같은 인생을 살고 싶지 않을까. 누가 일부러 실수를 하고 싶겠는가. 잘한 것보다, 잘할 수 있었는데 놓쳐버린 순간이 더 많다고 느끼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후회한다. 그러나 그때 잘할 수 있었는데도 하지 못한 데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다. 아홉 번 이기고 한 번 진 상대에게 밀리고 있는 것도 의도나 나약함 때문만은 아니다. 지금 화면 속 조코비치는 심판에게 불만을 토로하고, 공은 자주 네트에 걸린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렇다고 원인이 없는 것은 아니다.
돌이켜보면 후회할 일이 참 많다. 그러나 그 순간의 선택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스피노자는 지혜로운 사람은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모든 것은 필연의 질서 속에 있기 때문이다.
2세트가 끝난 뒤 조코비치가 발바닥 치료를 받는다. 어쩌면 이것이 지금까지의 부진을 설명하는 중요한 이유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스스로를 완전히 자유롭다고 믿는 것은 어쩌면 무지에서 비롯된다. 스피노자가 말한 ‘신에 대한 지적 사랑’은 모든 것이 필연임을 이해하는 태도다. 그때에야 비로소 후회하지 않게 된다.
지나간 일은 이미 흘러간 강물이다. 고대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가 “같은 강물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다”고 한 이유다.
누구나 위너로 살고 싶어 한다. 그러나 삶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오히려 자유로워진다. 자유는 필연을 인식할 때 비로소 찾아온다. 후회하는 한, 결코 자유롭지 않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난다. 3세트가 시작되자 무세티가 허벅지 부상으로 경기를 포기한다. 결국 조코비치가 기권승으로 준결승에 오른다.
우연일까. 무세티는 이전 경기들에서 이미 무리한 승부를 이어왔다. 결국 다 잡은 경기를 놓쳤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
승부는 결국 선택의 결과다. 우리는 그 선택 하나 때문에 웃고, 또 운다.

아시아대학교 교수와 대구교육대학교 연구교수 역임. 철학박사(전공 서양철학 중 현상학). 저서로는 ‘여행, 인문에 담다(2020)’ , ‘욕망으로 성찰한 조선의 공간(2021: 한국출판문화진흥원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 ‘신천에 철학 카페를 짓다(2023)’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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