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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강창일의 한국 영화 이야기] 영화 <검사와 여선생>, 법 기술이 해석하지 못하는 한국 영화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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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6-02-03 03:24 조회 54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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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검사와 여선생(1948)>의 한 장면    이미지 출처 : 한국영상자료원


법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나에게 법과 관련된 유일한 기억은 나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의 조각들이다. 대학에서 법을 전공하고 젊은 시절을 법과 철학에 대한 깊은 관심으로 보냈던, 그리고 지금은 노인이 된 아버지가 내게 법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사람 간의 약속이 더 중요하다는 가르침을 준 것을 지금도 기억한다. 아버지는 서로 악수를 하는 것은 서로가 약속을 하는 것으로 그 약속에 대한 존중의 표시이며, 이러한 약속에 대한 존중의 마음이 법에 앞선다고 강조하셨다. 하지만 요사이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소식은 아버지가 말한 것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어제도 오늘도 심할 정도로 한국의 미디어는 검사와 판사에 대한 담론으로 가득하다. 상상하기 힘든 일들을 감행한 사람과 그 협력자들이 있었고, 이를 국민이 직접 막아서서 사회를 나락에서 구출해 낸 생생한 장면이 미디어로 송출된 놀라운 장면들을 많은 이들이 생생히 목격하였음에도 이 사건의 관련자들은 자신들과 그 이해 공유자들의 잘못을 법의 기술로 빠져나가려고 하는 태도를 보여주고 있어 법에 대하여 문외한인 내가 보기에도 참으로 안타깝고 답답한 심정이다. 


전달되는 뉴스 속에서 검사들에 관한 이야기는 너무나 방대하여 정신이 어지러울 정도이며, 이를 바로잡으려는 노력 또한 쉽지 않아 보인다. 사법부의 판결 역시 실망과 우려를 낳는다. 날짜를 시간 단위로 계산하는 신통방통한 주장, 누가 봐도 확연한 의심이 가는 악의적 죄질의 사건을 너무도 심플한 무죄 판결로 패스하는 뻔뻔함, 몇 백 원 몇 천 원과 관련된 사건에 무거운 실형의 판결을 내려 가난하고 힘없는 약자들을 사회로부터 격리시키는 비인도적이고 패륜적 사고와 태도. « 레 미제라블 »의 장 발장 빵 절도 사건의 재판부도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이는 법조인에 대한 불신을 극에 달하게 만든다. 


이러한 상황은 문득 한국 영화 속 법정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1948년 윤대룡 감독의 무성 영화 « 검사와 여선생 »은 가난한 제자를 돌보았던 여선생이 살인 누명을 쓰고 법정에 서자, 검사가 된 제자가 그녀의 무죄를 입증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윤대룡의 스승 김조성은 1923년 무성영화 « 춘향전 »의 주연 배우였으며, 당시 이 영화를 해설하는 변사로 김춘광이라는 예명으로 활동한 무성영화 시대의 스타였다. 김조성은 제자 윤대룡의 부탁으로 « 검사와 여선생 »의 시나리오를 집필한다. 윤대룡 감독은 이미 1935년부터 유성영화 시대로 접어든 충무로에서 당시로는 보기 드물게 이 프로젝트를 무성영화로 탄생시켰다. 이 영화는 내가 프랑스에서 진행하고 있는 무성영화 변사 공연의 한 레퍼토리이기도 하다. 


판사와 검사의 구분이 모호하게 느껴지는 이 영화를 해설하며 나는 많은 의구심을 갖고 있었다. 영화 속 논조와 판결은 냉철한 법리보다는 은혜와 인륜이라는 개인적 서사와 감정적 호소에 기초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뭐…영화니까…영화인들이 법을 알겠어…하고 넘어간다.

며칠 전, 서울에서는 사회 공동체의 건강한 질서를 마비시키고 해를 끼치는 행위를 저지른 지도자와 그 협력자들에 대한 법적 심판이 시작되었다. 이 위법자들은 사특하고 요사스럽고 간교하게 법망을 빠져나가기 위해 기술적으로 간사하게 꾀를 부리는 악의적인 태도로 일관하여 많은 시민들에게 공분과 스트레스를 제공하였다.  


드디어 장어라는 별명의 뻔뻔한 피의자에게 담당 판사가 결론을 내려야 할 순간. 이 장면은 각종 미디어를 타고 세상에 공개되는데... 그런데…그런데… 

담당 판사가 스스로 눈시울을 적시며 판결문을 낭독하는 것이 아닌가. 판사는 이 위험한 사건을 막아낸 주인공은 바로 시민과 일부 정치인들이라고 선언하며 법기술자의 협력자인 피의자에게 엄한 유죄 판결을 내린다. 이는 법의 기술이 인륜이라는 거대한 가치 앞에서는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한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장면이었다.


아버지가 말했던 «악수»의 의미, 즉 약속과 신뢰라는 근본적인 존중이 사라진 법기술은 결국 공허한 지식을 바탕으로 하는 « 자기 살기 »의 방어와 공격의 방편에 불과하다는 걸 그리고 진정한 법치란 정교한 기술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예의에서 시작되어야 함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요사이 서울에서 들려오는 뉴스는 내가 얼마나 법을 모르는가를 일깨워 주고 있다.


<강창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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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8대학 연극영화 박사, 파리 10대학 비교문학 연구자, 무성영화 변사. 프랑스 방방곡곡을 누비며 강연회와 상영회를 통하여 한국영화를 알리고 있다.

저서로는 «Les Débuts du Cinéma en Corée »(Ocrée Editions, 2021), « Le Cinéma Coréen Contemporain : A l'Aube de Parasite »(Ocrée Editions, 2023)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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