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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파워 강국이 된 한국이 있기 전, 다른 한국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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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한국인들, 유럽 곳곳에 살아가다
-대통령의 사과와 약속, 이제는 제도 개선 시급

프랑스 북부 깔레(Calais) 인근의 작은 해안 마을에서 최근 한 한국계 입양 동포를 만났다. 동양인을 좀처럼 보기 어려운 지역에서 그녀는 오랫동안 자신의 삶을 일구며 살아가고 있었다. 열한 살 무렵 벨기에로 입양된 그녀는 미술 교사로 수십 년을 일한 뒤 현재는 반려견 미용사로 프랑스와 벨기에를 오가며 새로운 삶을 이어가고 있다. 놀라웠던 것은 한국을 떠난 지 수십 년이 지났음에도 그녀가 여전히 자신의 한국 성씨를 기억하고 있었고, 어린 시절 사용했던 몇 마디 한국어와 한국 음식에 대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비록 친부모를 찾을 엄두는 내지 못하고 있었지만 그녀를 프랑스 입양 동포 단체가 있다는 것을 알리고 한국의 뿌리 협회(Association Racines Coréennes) 회장과 연결해 주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런 사연과 삶이 유럽 구석 구석에 있겠구나 하는 생각했다.
오늘의 한국은 세계가 주목하는 나라가 됐다. K-팝은 세계 음악 시장을 흔들고, 한국 드라마와 영화는 국경을 넘어 사랑받고 있다. 한국 음식과 화장품, 한글과 전통문화까지 'K'라는 이름은 하나의 브랜드가 됐다. 대한민국은 이제 문화와 경제, 기술력을 바탕으로 세계 속 영향력을 확대하는 대표적인 소프트파워 강국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눈부신 현재를 이야기할 때마다, 우리는 한 가지 사실도 함께 기억해야 한다. 한때 가난과 사회적 현실 속에서 해외로 보내졌던 수많은 입양 동포들, 그리고 지금도 자신의 뿌리와 가족을 찾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존재를 말이다. 정작 한국이 잊고 지낸 것은 아닐까…
프랑스와 벨기에, 독일, 덴마크, 네덜란드 등 유럽 곳곳에는 한국에서 태어나 해외로 입양된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 이번에 만난 입양 동포뿐 아니라 유럽의 구석구석에는 한국이 지키지 못했고, 끝내 품지 못해 떠나보낸 어린 한국인들의 사연과 삶이 흩어져 있다. 전쟁의 상처가 채 아물지 않았고, 가난이 일상이었으며, 국가와 사회가 아이들의 삶을 온전히 책임질 수 없었던 시절의 한국이다. 그리고 그 시절 한국은 수많은 어린아이들을 해외로 보냈다. 그 아이들은 세계 곳곳에서 중년이 되었고 노년을 향해 가고 있다. 그들에게 한국은 여전히 '떠나온 나라'이자 '다시 알고 싶은 나라'로 남아 있다.
지난해 <파리광장>은 프랑스 입양 동포의 친가족 찾기를 돕기 위해 직접 나섰다. 그는 여러차례 관할 시청을 방문한 적이 있었지만 언어 장벽 등으로 좋은 소식을 접할 수 없었다고 밝혀왔다. 한국을 찾은 김에 그가 다녔던 초등학교와 관할 시청에 연락해 보았다. 하지만 초등학교는 학생 기록을 디지털화하면서 관련 서류를 모두 폐기했고, 관할 시청 역시 국내 입양 업무만 취급하고 있었다. 오랜 세월 품어온 그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에는 어디에서도 충분한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 돌아온 것은 안타깝게도 형식적인 답변뿐이었다. 그들은 모두 규정과 원칙만을 반복했을 뿐, 도움을 주려는 노력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친가족 찾기 및 국적 회복 간소화를 위한 제도화 시급
많은 입양 동포들이 개인 및 기관의 도움을 받아 친가족을 찾고는 있지만 아직도 이렇듯 친가족을 찾고자 하는 입양 동포들에게 제한은 크게 있다. 이를 위해 법 개정이 시급하다. 지난해 이재명 대통령의 입양 과정 인권 침해 사과 이후 <파리광장>은 입양동포 단체인 한국의뿌리협회 임원들과 간담회를 열었다. 이들은 개인정보보호 문제로 친가족을 찾기 위한 입양 확인서조차 확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2023년 제정된 입양특례법은 입양인이 입양정보 공개를 청구할 수 있도록 했지만, 친생부모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는 규정이 여전히 친가족 찾기의 가장 큰 걸림돌로 남아 있다. 예외적으로 의료적 목적 등이 인정되면 동의 없이도 정보 공개가 가능하지만, 실제 사례는 거의 없어 입양인의 의료권과 생명권 침해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또한 입양인이 사망할 경우, 자녀인 입양 동포 2세는 '친생부모의 동의'를 요구하는 현행 법 때문에 조부모를 찾을 권한이 없어 가족 찾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도 제도 개선이 필요한 문제로 지적됐다
지난 6월 중순 재불한인여성회 김치나눔 행사에서 만난 한 프랑스 입양 동포는 국적 회복을 시도했지만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복잡하고 까다로운 행정 절차의 벽을 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국인의 피를 이어받고 태어난 나라와 다시 연결되고 싶었지만, 그 길은 생각보다 멀고 험했다.
이재명 대통령의 사과와 약속, 이제는 제도화할 때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6월 유럽 방문에서 벨기에와 이탈리아 두 차례 동포 간담회를 가지면서 입양 동포 관련 언급을 했다.
이 대통령은 벨기에 방문 당시 재외동포청장에게 "입양동포들이 과거 인연을 찾는 데 부족함이 없도록 잘 챙겨보라"고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고, 특히 벨기에는 한국계 입양인이 많은 나라 중 하나여서 간담회 참석자에도 입양동포들이 포함됐다. 또한 이탈리아 동포 간담회에서도 "입양 동포와 그 자녀들이 모국과 계속 연결될 수 있도록 자신의 뿌리를 쉽게 찾고 과거를 되돌아볼 수 있도록 하는 조치를 최대한 신속하고 강력하게 추진하겠다"고 밝히면서, 가족 찾기 지원, 모국 방문 지원, 국적 회복 지원, 한국어·한국문화 교육 지원 확대 등을 약속하며 입양동포 정책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과거는 바꿀 수 없다. 그러나 과거를 대하는 태도는 바꿀 수 있다.
지금의 한국은 분명 자랑스럽다. 그러나 오늘의 성취가 어제의 아픔과 실수를 지워주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대한민국이 걸어온 길을 자랑스러워하면서도, 동시에 그 과정에서 남겨진 상처들 또한 직시할 수 있어야 한다. 오늘날 우리는 그 역사를 단순히 "가난했던 시절의 불가피한 선택"으로만 정리해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은 이제 충분한 역량을 갖춘 나라가 되었다. 그렇다면 해외 입양 동포들이 자신의 뿌리와 가족을 찾고, 잃어버린 국적을 회복할 수 있도록 보다 체계적인 지원에 나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관련 법률 개정과 제도 정비가 뒤따라야 하며, 친가족 찾기와 국적 회복 절차를 보다 쉽고 현실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 해외 입양 동포들이 더 이상 복잡한 행정 절차 앞에서 좌절하지 않도록 국가 차원의 지원 체계를 마련해야 할 때다.
<파리광장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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