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 살아야 할 몇 가지 이유](47) '파리, PSG, 리퍼블릭,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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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enny Sika / Arthur Anselme / Sacha Mas / Amandine Martin
"유럽의 챔피언! Champions d’Europe! 유럽의 챔피언! Champions d’Europe!"
파르크 데 프랭스(Parc des Princes) 경기장에 모인 4만 8천여 명의 군중이 파리 시내 곳곳으로 쏟아져 나오며 자정이 넘도록 외쳤다. 축구 종주국 영국의 리그 우승팀 아스널을 상대로,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PSG(파리 생제르맹)가 또 한 번 유럽 챔피언 타이틀을 지켜냈기 때문이다. PSG 유니폼을 입은 군중이 몰려 지나가면 축하 폭죽이 몇 차례 터졌고, 그 자리에는 군사 시위를 방불케 하는 화염이 치솟았다. 선수들에겐 그저 하나의 ‘게임’이었을지 모르지만, 관중들은 진심으로 울고 소리치며 싸운다. 스트리밍 시대에 경기 관람 같은 전통적인 볼거리의 위기는 기우에 불과했던 모양이다. 도시가 품은 감정을 합법적으로 배출할 수 있는 통로가 점점 줄어들자 파리는 이번 기회도 놓치지 않았다. 결승전이 열린 일요일, 일주일 동안 지속된 열대야에도 펍과 카페와 광장은 인파로 가득 메워졌다. 거의 종교적인 열정 때문에 도시는 일찌감치 교통마비를 예고했다. 모인 이들이 실제로 누구의 팬이든 아니든, 아니 축구에 관심이 있든 없든 중요하지 않았다. 처음 보는 이들과 어울려 하나의 대상을 함께 사랑하고 그 대가로 미움을 표출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파리 엘리제궁 접견실에서 두 번째 챔피언스리그 우승 트로피를 막 가져온 PSG 선수단을 맞이한 뒤, 연설의 끝에서 “파리 만세, PSG 만세, 공화국 만세, 프랑스 만세!”를 외쳤다. 우승을 기리는 퍼레이드라기보다, 마치 해묵은 전쟁이 끝나기라도 한 듯한 장면이었다. 우익 포퓰리즘과 함께 인종주의와 외국인 혐오가 정치의 주류 영역으로 들어오고, 분쟁과 전쟁이 흔해진 탓에 잠시 잊고 있었던 사실이 있다. 증오, 인종주의, 외국인 혐오는 원래 축구 경기장 안에 갇혀 있던 감정들이었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파리에서 시작된 세계축구연맹(FIFA), 월드컵, 그리고 유러피언컵(오늘날 챔피언스리그)은 모두 세계를 하나로 모으려는 스포츠 엘리트의 이념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그 이상과 달리 축구 경기장은 오랫동안 분열된 사회가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투기장이었다. 훌리건은 이제 거의 옛 시대의 유물이 되었지만, 축구에는 오랫동안 노동계급의 거친 취미라는 이미지가 붙어 있었다. 파리의 엘리트들이 축구를 경멸했던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오늘날 도시가 스포츠를 통해 자신을 설명하는 일은 꽤 흔해졌지만, 예술, 혁명, 패션 같은 고매한 언어로 자신을 설명해 온 파리가 PSG라는 클럽과 자신을 구분하지 못하는 진정한 열혈팬이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1970년에 창단된 PSG를 카타르가 인수한 지 15년이 지났다. 클럽의 성공이 부유한 카타르 구단주들의 자금 지원 덕분이라는 사실에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한때 PSG에는 역사도 정체성도 없고, 그저 승리에 집착하는 가짜 클럽이라는 인식이 따라붙었다. 내가 처음 파리에 왔을 당시만 해도 축구는 일상 대화의 주제가 아니었다. PSG 유니폼을 입은 사람도 거의 볼 수 없었다. PSG가 여전히 지리적으로 ‘교외(banlieue)’의 상징처럼 여겨졌기 때문일 것이다. 카타르 자본은 PSG에 마르지 않는 돈을 아낌없이 쏟아부었다. 홈구장의 VIP석은 고급스럽게 단장되었고, 구단은 ‘파리’를 특히 강조한 새로운 엠블럼을 만들었다. 축구 역사상 가장 큰 두 건의 이적료를 통해 파리는 훌륭한 작가와 화가에 이어 세계적인 축구 선수들까지 갖추게 되었다. 이제 클럽 선수들은 대부분 파리나 프랑스 출신이 아니고, 구단의 어떤 자본도 프랑스적이지 않으며, 팬들의 충성심 역시 지역 공동체의 기억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아이러니하게도 PSG는 순수하지 않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파리를 가장 잘 대변한다. 어쩌면 파리의 가장 적나라한 민낯은 PSG 유니폼을 입은 군중이 밤거리를 점령한 바로 그 순간에 드러나는지도 모른다.
<윤영섭 0718sam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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