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아줌마 단상] 파리에 거주하는 독립지사의 증손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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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름 휴가에 한국을 다녀왔다. 지난해 넘어진 이후 눈이 잘 보이지 않는 엄마를 보러간 것이다. 걱정했던 것과는 다르게 엄마는 혈색이 좋았고, 눈 상태는 내가 보기에 엄마의 영양 상태에 따라 달라지는듯 했다. 파리의 폭염에 익숙해져 있어서인지, 한국은 도처에 에어컨이 있어서인지, ‘덥다’는 아우성은 치지않았다. 엄마와 같은 방에서 자고, 같은 식탁에서 식사를 하며, 엄마의 지나온 이야기와 가족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의 이야기를 하는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이번에 체감할 수 있었다. 사소하지만 너무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어느날 저녁 식사를 하면서 엄마와 돌아가신 아버지 이야기부터 독립운동을 한 할아버지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할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셨기에 뵌 적이 없다. 할아버지가 독립운동을 한 사실은 한국 정부의 관련 기관에서 우리 집으로 알려왔다. 그때부터 이는 우리 집안의 자랑이 되었고, 2001년 할아버지 이름으로 건국 훈장 애족장이 수여되었다. 엄마 집 거실 한가운데 걸려져 있는 애족장에는 자주독립과 국가 발전에 이바지해서 대한민국헌법의 규정에 의해 건국훈장 에족장을 추서한다고 되어있다. 2001년 8월 15일이라고 날짜가 명시되어 있었다.
필적 못알아보게 발가락에 붓을 끼워 격문 작성
엄마의 할아버지 독립운동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할아버지는 순창에서 청년들을 모아 독립운동을 했고, 일제가 필적을 알아채지 못하게 발가락에 붓을 끼워서 글을 썼다는 것과, 그러다가 체포되어 1년 동안 옥고를 치렀다고 했다. 특히 발가락에 붓을 끼워 글을 쓴 사실은 할아버지의 여동생인 나의 고모 할머니가 부모님께 알렸다. 그래서 독립운동을 한 할아버지 이야기를 할 때면 이 일화도 늘 함께 따라다니곤 했다. 부모님과 우리 형제들은 이를 참 자랑스럽게 여겼다. 일제 강점기 당시 헌병대와 경찰은 격문이 발견되면 필적 감정을 통해 주동자를 가장 먼저 색출했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이를 미리 간파하고 발로 글씨를 쓰면서 치밀하게 준비를 한 것이다.
나는 파리로 다시 돌아왔고, 배우 하영의 증조부 친일 논란을 보면서, 외람되게 나의 할아버지를 검색하게 되었는데 생각보다 많은 자료들이 있어 좀 놀랐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찾은 할아버지 독립운동 관련 자료에 의하면, 1919년 3·1운동 당시 순창에서 두 차례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3월 17일 순창 장날을 앞두고 ‘조선독립단 만세’ 등의 격문을 직접 작성해 순창군청과 순창헌병분견대, 순창학교 앞에 게시하며 독립의 뜻을 알렸다. 한 달여 뒤인 4월 26일 순창 장날에는 군민들이 함께 독립만세를 외칠 것을 계획했다. 그는 “20세부터 50세까지의 장정은 빠짐없이 모이자”는 내용의 격문을 작성해 순창면사무소 게시판과 돌담에 붙였으나 일제 경찰에 체포됐다. 이 일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으며, 정부는 공훈을 인정해 2001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는 내용들이었다.
특히 할아버지의 격문 내용들이 구체적으로 나와 있었다: "1919년 4월 26일 독립만세를 부르겠다. 조선인을 죽이려면 죽여보아라. 독립만세를 부르는 사람을 아무리 죽여도 이를 대신할 사람이 5천만이 있다". 나는 이 글 내용을 보고는 할아버지가 대담하고 다소 과격(?)한 느낌을 받았고, 내가 불의를 보면 과격해지는 이유가 할아버지의 DNA 때문이지 않을까 싶었다. 발가락 붓 끼워 격문 쓴 내용이 없어, 나는 이를 독립기념관과 순창의 지역 언론들에 알리는 메일을 보냈다. 할아버지의 애족장 사진과 엄마의 증언이 담긴 음성녹음을 첨부파일했고, 답을 기다리고 있다. 귀한 자료가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엄마에게 이를 알리니, 엄마는 당신 시아버지의 독립운동 활동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들이 있어 너무 의미있고 좋다고 하면서 내가 큰 일을 했다고 칭찬했다. 그리고 나는 아버지가 살아계셨으면 얼마나 뿌듯해 하셨을까 싶었다. 여름 휴가라 집에 있는 딸들에게도 이를 알리면서 "너희들은 독립지사 증손녀들이란다"라고 이야기했다. 올해 광복절은 더욱 의미있게 다가왔다.
<파리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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