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유로 이발과 5유로짜리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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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동네 이발소에서 떠올린 물가와 삶, 그리고 「효자동 이발사」

« Barber king » 이발사 ©강창일
프랑스 파리의 날씨가 갑자기 더워졌다. 귀를 스치는 머리카락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고, 결국 나는 귀 근처의 머리를 직접 가위로 잘라보기로 했다. 결과는 참담했다. 거울 속 내 머리에는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다. 당황한 나는 서둘러 집 근처 이발소로 달려갔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이발소는 문을 닫았고, 바로 옆 닭튀김 가게도 함께 셔터를 내린 상태였다. 그들도 더우니까.
파리에 살다 보면 특정 지역 출신 이민자들이 특정 직종을 주로 맡고 있다는 인상을 받을 때가 있다. 적어도 우리 동네만 놓고 보면 그렇다. 튀니지 출신들은 빵을 굽고, 이집트 출신들은 과일을 팔고, 파키스탄 출신들은 닭을 튀기고, 알제리 출신들은 이발을 한다. 내 단골 이발소 역시 알제리 출신 이발사가 운영한다. 파리의 경우 좌안은 알제리계가 우안은 파키스탄계가 저가 이발소를 장악한 느낌이다. 이 싼값으로 경쟁하는 이발소의 이발료는 10년 전 5유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후 6유로, 7유로로 조금씩 오르더니 지금은 15유로를 받는다.
« 10년 동안 가격이 세 배나 올랐네요. »
이발사는 지는 일이 없다.
« 물가도 그만큼 올랐잖아요. »
이번엔 유조선이 꼼짝 달싹 못하게 되니 기름값이 올랐고 물가가 올랐다. 왜 물가는 세 배 가까이 올랐는데 내 월급은 그렇지 못할까. 사실 우리가 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다. 누군가는 전쟁을 시작하고, 누군가는 미사일을 쏜다. 누군가는 배를 막는다. 어떤 날은 쿠데타가 일어나고, 어떤 날은 내란이 벌어진다. 국제 유가가 출렁이고 세계 경제가 춤을 춘다. 어떤 기업은 천문학적인 이익을 남기고,어떤 회사는 커다란 이익을 내어 그 돈을 직원들과 몇 억원씩 나누는 일도 생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 주변 사람들에게는 그런 일들이 잘 일어나지 않는다. 내가 아는 사람들은 일요일마다 조금이라도 더 싼 채소를 찾아 시장을 돌고, 몇 유로라도 아끼기 위해 할인 전단지를 챙긴다. 빵집에서는 새벽부터 반죽을 하고, 과일가게에서는 무거운 상자를 나른다. 뜨거운 기름 앞에서 하루 종일 일하는 닭튀김 가게 의 일도 쉬워보이지 않는다. 이발사는 가격을 올렸다는 손님의 불평을 묵묵히 들어주고 있다.
이발사 이야기를 하다보니 송강호 주연의 영화 「효자동 이발사」가 떠올랐다. 이 영화는 청와대 근처 효자동에서 이발소를 운영하는 평범한 이발사 성한모의 이야기다. 성한모는 나라를 믿는 사람이다. 정부가 하는 일은 옳다고 생각하고, 대통령을 존경하며 살아간다. 그러다 우연한 사건으로 대통령 전속 이발사가 된다. 권력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대통령의 머리를 깎는 사람이 된 것이다. 동네 사람들은 그를 ‘성실장’이라 부르며 부러워한다. 하지만 영화는 여기서 성공담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3·15 부정선거, 4·19 혁명, 5·16 군사정변, 유신체제, 중앙정보부의 공포정치, 그리고 10·26 사건까지. 한국 현대사의 거대한 사건들이 그의 삶으로 밀려들어 온다. 주인공 이발사역의 배우 송강호는 관객을 웃긴다. 그런데 웃음이 멈춘 자리에서 묵직한 슬픔이 시작된다.
어느 날, 그의 어린 아들은 단순히 설사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간첩 혐의를 받아 중앙정보부에 끌려간다. 아들은 고문을 당하고 양손과 발목이 묶인 채 거의 버려지듯 집으로 돌아오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다리에 이상이 생겨 제대로 걷지 못하게 된다. 아버지 이발사는 전국을 뛰어다닌다. 이름난 병원을 찾아가고, 한의원을 찾아가고, 용하다는 무당을 찾아가고, 깊은 산속 암자를 찾아가고, 누군가가 좋다고 하면 어디든 아픈 아들 낙안을 등에 업고 뛰고 또 뛴다. 말없이 아들을 등에 업고 산길을 오르는 장면은 고약하게도 저 깊숙한 곳의 기억과 감정을 건드리며 사나이의 눈물을 찐한 육수로 흐르게 만든다.
2026년 파리의 어느 무더운 오후, 불평이 많은 고객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이발사와 끝없는 수다를 떠는 나. 우리 둘은 어쩌면 각자의 기억과 각자의 아버지를 떠올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늘 우리 동네 꽃가게에 빨갛게 예쁜 꽃이 피어있었다. 5유로. 꽃은 가격 논쟁을 안하게 만든다. 내 몸의 일부가 아니여서일까. 아니면 우리는 꽃을 사는 것이 아니라 숭고함을 사는 것이라 그런걸까. 이발을 한 뒤 이발사에게 아까 산 그 꽃을 좀 들고 있으라고 한 뒤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하라는데로 하는 우리동네 이발사이시다. 찰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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