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창일의 한국 영화 이야기]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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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만의 정의가 설계한 괴물의 세습

이미지 출처: 한국 영상 자료원
2012년 윤종빈 감독이 연출하고 최민식과 하정우가 주연을 맡은 영화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는 1980년대 부산의 해안가를 배경으로 한국적 욕망의 원형질이 공적 시스템을 어떻게 마비시키는지를 한국사회의 폐부 깊이 추적한다. 133분의 러닝타임 동안 카메라는 액션 활극의 장르적 쾌감을 넘어, 혈연과 지연이라는 폐쇄적 카르텔이 법치라는 근대적 규범을 해체하고 권력을 사유화하는 과정을 집요하게 응시한다.
영화는 권력의 이면을 지극히 한국적인 해학과 강렬한 캐릭터들의 충돌로 풀어내며 서사의 밀도를 높인다. 최익현(최민식 분)이 파출소에서 ≪느그 서장≫ 운운하며 사적 권위를 휘두르는 대목이라든가 가짜 족보를 매개로 조폭 보스 형배(하정우 분)에게 절을 받는 대목은 희극과 비극의 경계를 오가며 한국적 인맥 정치의 기괴한 단면을 민망하면서도 아주 우습게 그러나 아주 재미있게 드러낸다. 여기에 당시 실제 건달을 섭외한 것이 아니냐는 찬사를 받았던 김성균의 서늘한 행동대장 연기, 그리고 (최근 논란의 중심에 서면서 은퇴 선언을 하기는 했지만) 조진웅의 걸쭉한 부산 사투리는 극의 생동감을 절정으로 끌어올린다. 김판호(조진웅 분)가 최형배를 향해 비릿하게 웃으며 던지는 도발적인 언사들이나 영화 내내 등장하는 ≪살아있네!≫라는 일성은 영화에서 살아 꿈틀거리는 항구도시 부산을 묘사하는 데 핵심으로 작동하는 한편 명분보다 실리가 우선인 나쁜 놈들의 야생적 생존법을 펄떡거리는 살아있음으로 형상화한다.
그러나 이러한 장르적 성취 이면에서 우리가 응시해야 할 지점은 1990년 군인 정권의 ≪범죄와의 전쟁≫이 지닌 구조적 모순이다. 도둑이 도둑을 소탕하겠노라 선언하는 이 역설적인 풍경은 군사 정권이 지닌 태생적 정당성의 결여를 희생양을 통해 은폐하려 했던 기만적 쇼의 아이러니라 비판받기도 한다.
최익현이 서슬 퍼런 칼날 아래서도 끝내 생존하여 자신의 아들을 검사로 키워내는 결말은 오염된 뿌리가 합법적 권위로 세탁되어 대물림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서늘한 비극으로 깊은 참담함을 남긴다. 그리고 엔딩에서 들려오는 ≪대부님!≫이라는 환청은 이 ≪나쁜 놈들의 시대≫가 단절된 과거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주류로 정착했음을 알리는 조롱 섞인 선언으로 들리기도 한다.
이 끈질긴 악의 생동력을 지켜보다 보면 2026년 오늘 한국에서 들려오는 소란이 기묘한 기시감으로 다가온다. 민주주의의 근간을 위협하는 내란의 징후들과 권력 최상층부를 둘러싼 비리 의혹들은 영화 속 인물들이 사익을 위해 벌이던 혼탁한 세태와 본질적 궤를 같이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조바심을 자아낸다. 어쩌면 이 서늘한 걱정의 끝은, 최익현이 공들여 직조해낸 그 ≪나쁜 피≫가 오늘날 한국 사회를 좌지우지하는 검찰 권력의 원형이 되어버린 현실을 가리키는 것은 아닌지.

이미지 출처: 알로 시네(Allociné)
과거의 부조리가 설계한 세계관 속에서 그 영향을 받으며 성장한 이들이 다시금 권력의 전성시대를 구가하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이 영화가 하필 요즘 떠오르는 이유는 아마도 법과 정의의 수사학 뒤에서 패거리의 안위만을 도모하는 그 비릿한 생존 문법이 여전히 배회하고 있다는 반복적 불안감에서 기인하는 것 같다. 매 시각 멀리서 들려오는 한반도의 소식이 참담하다 못해 역겨운 문드러진 악취가 아니라 맛있는 해물의 향기였으면 하는 바람은 지나친 것일까.
아아. 말하다보니 갑자기 부산에 가고 싶다.
니 아직 살아있나?
이 영화의 감독의 필모그래피는 주목할 만하다. 그는 《용서받지 못한 자》라는 장편 독립영화로 데뷔하였는데, 이는 감독이 다니던 중앙대학교 영화과 졸업작품으로 아직 무명이던 동문 하정우를 주연 배우로 기용하여 2005년 제25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에서 신인남우상을 수상하게 한다. 감독은 폭력과 부조리가 일상화된 한국 군대 문제를 다룰 자신의 영화가 칸 영화제에 갈 것이라며 하정우를 꼬셨는데 실제로 이 영화는 2006년 제59회 칸 영화제의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되어 약속을 지켰다. 2008년, 감독은 역시 하정우를 주연 배우로 내세우고 윤계상을 배우로 자리매김 시킨 영화 « 비스티 보이즈 »에서 호스트, 즉 남성 접대부로 살아가는 청년들을 통하여 70년대와 80년대를 점령했던 « 호스티스 영화»라는 독특한 한국 영화 장르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2018년에는 안기부가 주도한 북풍 공작을 다룬 영화 « 공작 »으로 분단이라는 한국사회의 또 다른 어둠을 다룬다. 그는 봉준호, 박찬욱, 나홍진 등과 함께 차기작이 궁금한 한국의 감독이다.
<강창일>

파리 8대학 연극영화 박사 및 객원 연구원. 무성영화 변사. 프랑스 방방곡곡을 누비며 강연회와 상영회를 통하여 한국영화를 알리고 있는 해설사.
저서로는 « Les Débuts du Cinéma en Corée »(Ocrée Editions, 2021), « Le Cinéma Coréen Contemporain : A l'Aube de Parasite »(Ocrée Editions, 2023)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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