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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부르델 미술관- 막달레나 아바카노비치 회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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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조된 존재, 해체된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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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수


파리 부르델 미술관에서 폴란드 출신 작가 막달레나 아바카노비치(Magdalena Abakanowicz, 1930–2017)의 대규모 회고전 「존재의 직조(La trame de l’existence)」가 2026년 4월 12일까지 진행된다. 아바카노비치는 전쟁과 공산 정권의 검열 속에서 성장한 20세기 폴란드를 대표하는 작가로, 유기적 형태의 반복과 기념비적 규모를 통해 인간과 사회의 조건을 탐구해왔다. 그녀의 작업은 강한 조형성과 함께 정치적·동시대적 문제의식을 담아낸다.


섬유에서 시작된 급진적 전환

아바카노비치는 회화에서 출발해 태피스트리 작업으로 옮겨갔고, 이후에는 그것을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새로운 표현 방식으로 바꾸었다. 천장에 매달린 거대한 섬유 조각 「아바칸(Abakans)」 연작은 직물의 평면성을 넘어 공간을 점유하는 조각으로 확장된다. 재활용 섬유와 거친 질감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들은 인간의 피부와 외피를 연상시키며 물질 자체가 의미를 생성하는 조형 언어를 구축한다. 이는 형식적 실험에 그치지 않고 검열과 결핍 속에서 이루어진 하나의 저항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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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수


인간, 껍질로 남다

1970년대 이후 작업은 인간 형상으로 나아간다. 실제 신체를 본떠 만든 「군중」 연작은 머리와 얼굴이 제거된 채 반복된다. 동일한 형식 속에서도 미세한 변형을 지닌 이 인물들은 개별성을 상실한 존재를 드러낸다. 개인은 집단 속에서 익명화되고 신체는 껍질로 환원된다. 이는 작가가 경험한 전쟁과 정치적 억압이 남긴 흔적이며 인간이 구조 속에서 어떻게 형성되고 소거되는지를 시각화한 작업이다.


존재 이전의 상태

전시의 중심에는 1980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공개된 「배아학 (Embryologie)」이 놓인다. 코쿤 형태의 집합체는 세포, 조직, 혹은 장기처럼 보이며 관람자를 생명의 기원으로 끌어들인다. 이는 인간 이전, 사회 이전의 상태를 사유하는 작업으로 아바카노비치의 조형 언어가 물질에서 존재론으로 확장되는 지점을 보여준다. 한편 아바카노비치는 1980년대 이후 드로잉 작업을 본격화하며 「파리」 연작을 통해 미시적 유기 구조를 확대해 탐구한다. 죽은 파리나 번데기 상태를 관찰하는데, 부패의 이미지가 아니라 생명에 대한 근원적 호기심을 드러낸다. 


군중과 폭력의 형상

「돌연변이」와「군중 V」는 공간을 점유하며 집단의 위협적 에너지를 드러낸다. 특히 얼굴이 지워진 인물 군상은 생각하지 않는 유기체로서의 군중을 형상화하며 개인의 붕괴를 극단적으로 표현한다. 전시는 마지막으로「전쟁의 놀이」연작으로 이어진다. 나무와 금속이라는 상반된 재료는 생명과 폭력, 자연과 통제 사이의 긴장을 만들어내며 제목의 모순을 물질로 반복한다.


직조된 삶의 은유

아바카노비치에게 섬유는 단순한 재료가 아니다. 실과 직조는 삶과 시간, 역사와 개인이 얽힌 구조를 드러내는 장치다. 늘어지고 찢어진 섬유는 폭력과 상처를 드러내고 반복적인 제작 과정은 인간의 노동과 시간을 축적한다. 그 결과 작품은 단단한 조각이 아닌 흔들리고 변형되는 존재의 상태를 제시하게 된다.  전시는 인간을 하나의 완결된 존재가 아닌 끊임없이 엮이고 변형되는 과정으로 바라보게 한다. 아바카노비치의 작업은 조각과 섬유의 경계를 넘어서 인간이 어떻게 세계 속에서 형성되고 사라지는가라는 질문을 남긴다.  


전시 정보

●전시 기간: 2025. 11. 20 – 2026. 04. 12

●위치: Musée Bourdelle

(18, rue Antoine-Bourdelle 75015 Paris)

●요금: 일반 12€/ 할인 10€ (18-25세, 학생)

●운영 시간: 10시 - 18시 (월 휴무)

       

<한지수 hanjisoo031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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