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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파리에 살아야 할 몇 가지 이유] Ep.44 '파리의 120일, 혹은 방탕주의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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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6-04-21 00:36 조회 37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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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ter Paul Rubens, The Massacre of the Innocents


상대에게 고통을 줌으로써 성적 쾌락을 얻는 가학성애를 뜻하는 사디즘은 프랑스 귀족이자 작가였던 사드 후작(Marquis de Sade)의 이름에서 따왔다. 외설성과 급진성 때문에 끊임없이 스캔들을 일으킨 그는 1785년 바스티유 감옥에 수감된 상태에서『소돔의 120일 혹은 방탕주의 학교』를 썼다. 이 작품은 네 명의 프랑스 귀족 방탕자들이 외딴 성에 스스로를 가두고, 방탕한 이야기와 실천을 통해 욕망을 체계적으로 극단까지 밀어붙이는 과정을 그린다. 구역질이 날 정도로 집요하게 묘사된 성적 욕망과 잔혹한 폭력 앞에서 신의 진노로 유황과 불이 쏟아져 멸망한 ‘소돔’이라는 이름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4개월에 걸쳐 150가지의 소름 끼치는 타락 행위가 단계적으로 배열되고, 강도는 점점 높아지며, 반복과 훈련을 통해 쾌락은 길들여진다. 이제 기이한 행위들은 거의 곡예에 가깝고, 모든 금기를 연쇄적으로 깨는 동안 정신은 한 없이 뒤틀린다. 이 작품은 단순한 일탈의 기록이 아니라 욕망을 체계적으로 학습하고 심화시키는 하나의 ‘교육 과정’처럼 전개된다. 이미 수차례 금지된 적 있는 역사상 가장 불순한 이야기 중 하나가 계몽주의의 고전이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악덕과 충동, 잔혹함이 들끓는 오늘의 사회를 이해하기 위해 200년 전에 죽은 사드를 굳이 불러낼 필요는 없다. 그가 소설 속에서 다룬 모든 것은 그 이전부터 존재했고 이후에도 계속될 것이다. 화려한 연회와 방탕한 관계, 스캔들과 범죄, 그리고 바스티유 감옥에서의 폭동 가담과 정신병원에서의 연극 상연에 이르기까지, 그의 극단적인 삶은 단순한 개인사가 아니라 욕망과 혼란이 뒤섞인 도시 파리를 그대로 투영한다. 그러므로 사드, 프랑스 정신, 18세기, 방탕주의 같은 단어들은 결국 하나의 동일한 본질을 가리킨다. 살아갈 자유, 곧 육체적이면서 동시에 정신적인 자유다. 한 번역가는 사드의 망상 혹은 몽상이 담긴 글을 미문은 아닐지라도 지나치게 논리적인 문장이라고 평했다. 사드는 음탕한 장면 속에서도 냉철한 주장을 밀어붙이며 고통과 쾌락의 신비로운 결합을 웅변한다. 고통은 쾌락을 낳고, 쾌락은 더 큰 고통을 요구한다. 그러나 고통을 통해 가능해진 쾌락은 동시에 그 자체를 파괴했다. 방탕주의라는 하나의 기술 혹은 예술을 통해서도 우리는 결코 화살이 과녁을 향해 날아가는 것처럼 빠르게 행복에 도달할 수 없다. 한껏 고양된 방탕가는 "태양을 공격해 우주에서 그것을 제거하거나, 그것을 이용해 세계를 불태우고 싶다"고 외쳤다. 그러나 사회는 이미 불타오르는 듯했다.


쾌락, 폭력, 금기, 파괴 충동을 향한 사드의 집요한 문제제기는, 방종이라는 이름 아래 도덕의 경계를 넘어서려는 인간 욕망의 구조를 드러낸다. 이러한 충동은 이후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에서 에로스와 타나토스, 즉 욕망과 파괴 충동이 맞물리는 이중 구조로 다시 정식화되었다. 자유와 방탕의 경계를 시험한 사드의 실험 정신은 여전히 파리 곳곳에 숨 쉬고 있다. 이 나라는 욕망을 방치하지 않는다. 파리에는 내가 본 것 중 가장 매혹적인 어리석음이 있다. 이제 막 파리에서의 삶을 시작했을 때, 초보 방탕가였던 나는 비난과 신음이 뒤엉킨 향락의 도시 속에서 타오르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나는 왜 사드를 읽는가. 사드를 그의 말 그대로 받아들이고 진지하게 여기는 것만큼 무의미한 일은 없다고 조르주 바타유가 말하지 않았던가. 나는 포기하지 않고 방탕함의 지혜를 구한다. 내 삶의 진정한 희열을 찾아 나선다. 소돔의 120일은 단순히 극단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사드의 텍스트는 독자를 유혹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공격하는 반항적 기질을 지니고 있다. 방탕가의 목적은 욕망의 충족에 있지 않다. 오히려 욕망으로부터 벗어나 완전한 자기 자율성에 도달하는 데 있다. 사드는 우리 모두와 관련이 있다.


<윤영섭 0718sam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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