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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창일의 한국 영화 이야기] 연재 (1) 사라진 필름 속에서 되살아난 나운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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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소설 아리랑 》 첫 페이지,  이미지 출처 : 서울, 박문서관, 1930.


1938년 열린 제1회 조선영화제, 한국 영화사의 첫 축제로 기록

2026년 5월은 프랑스 칸 영화제의 79회 행사기간이다. 박찬욱 감독이 심사위원장을 맡았다.  영화  « 곡성 »을 연출하였고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감독 중 한 명인 나홍진 감독의 작품도 참가했다. 한국에서는 현재 부산영화제가 아주 큰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한국의 1세대 영화인들에게 영화제는 어떤 것이었을까.

1919년 한국의 관객은 극장으로 몰려가 처음으로 한국배우들이 스크린에 등장하는 영화를 보는 체험을 한다. 이후 1920년와 30년대에는 일제의 강점기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도 영화제작은 많은 관심을 받았다. 1935년 최초의 유성영화인 《춘향》이 개봉되어 무성영화가 사라지기 시작하였지만 영화의 해설가인 변사의 인기가 워낙 높았던지라 무성영화의 제작은 한국전쟁 이전까지 계속되었다. 


제1회 조선영화제

1938년 11월 9일 조선일보가 제1회 조선영화제 개최 소식을 보도함으로써 막을 올린 제1회 조선 영화제 행사는, 조선일보사 주최 하에 영화 전시회와 시나리오 공모전, 그리고 우수 영화 상영회라는 세 가지 주요 축을 중심으로 조직되었다. 

당시 활동하던 조선의 영화인들이 대부분 조선일보사 강당에서 열린 전시회에 참석했는데, 다양한 영사 장비와 촬영 카메라를 선보인 이 자리는 수많은 인파를 불러모았다. 수천 명의 관람객이 몰려들면서 영화제를 위한 전시 기간이 이틀 더 연장되는 성황을 이루었으며, 시나리오 공모전에는 150편이 넘는 작품이 출품되었다. 특히 최고의 무성영화와 유성영화를 가리는 투표가 진행되었는데, 여기서 영화《아리랑》이 압도적인 표 차이로 최고의 무성영화에 선정되었다.

당시 영화소설이라는 쟝르의 책들이 제작 및 판매되었는데《영화소설 아리랑》이란 제목의 책이다. 이 책의 첫 페이지에는 영화의 감독이자 시나리오 작가 그리고 주연배우인 나운규의 사진과 함께 영화 시나리오 형태의 텍스트가 실려 있다. 


<강창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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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8대학 박사 및 객원연구원. 무성영화의 변사.프랑스 방방 곡곡을 누비며 연극영화를 통하여 한국의 문화를 알리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 한국 영화의 시작(Les Débuts du Cinéma en Corée, 2021) »과 « 현대 한국 영화 : 기생충의 서막(Le Cinéma Coréen Contemporain : A l'Aube de Parasite, 2023) »이 있다. SCÈNE ET IMAGE  회원으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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