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루브르 복원가 김민중, 파리에서 한지의 길을 열다
작성자 정보
- 최고관리자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 0 추천
- 목록
본문
-파리 마레 지구, 문화재 복원용 한지 보급처 탐방
-파리 한복판에 마련한 ‘유럽의 장흥고’
한지 보관장에서 한지를 보여주고 있는 김민중 복원가
2025년 1월 파리 마레 지구에 한지 소장 보급처가 문을 열었다. 이로써 파리에서도 한지를 활용한 문화재 보수·복원에 필요한 재료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확실한 기반이 마련됐으며, 한국 전통 한지를 활용한 문화재 보존·복원 작업이 더욱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 같은 한지 소장 보급처를 개설한 이는 전 루브르 박물관 복원가 김민중 씨다. <파리광장>은 파리의 한지 보급처를 찾아 김민중 전 루브르 박물관 복원가로부터 우리 전통 한지의 우수성과 보급처를 설립하게 된 계기를 들어보았다.
한지 보급처에 들어서자 은은한 향이 공간을 감쌌다. 한지 제작에 필요한 도구들이 벽면을 장식하고 있었고, 색을 입힌 한지 벽지가 전시돼 있었다. 무엇보다 눈길을 끈 것은 20여 개의 얇은 서랍이 층층이 놓인 한지 보관장이었다. 각각의 서랍에는 자물쇠가 달려 있어 한지를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또한 한국의 전통 기법으로 한지를 이용해 만든 꽃도 공간을 장식하고 있었다. 우리 전통문화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공간에서 김민중 복원가의 한지 이야기를 듣는 동안만큼은 기록적인 파리의 폭염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파리에 한지 소장 보급처를 만들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2021년 루브르 박물관에서 라파엘로 작품을 복원하는 프로젝트가 있었습니다. 복원 계획은 모두 준비됐는데 정작 프로젝트에 필요한 한지가 없었습니다. 그 작품은 해당 한지로 복원하는 것이 가장 적합했지만 유럽에서는 이 한지를 구할 수 없어 결국 손에 익은 다른 종이(일본 화지)로 복원하게 됐습니다. 저뿐 아니라 이 모든 준비에 가담했던 루브르 복원팀 모두 매우 안타까워했습니다. 저를 포함해 모두가 절망했습니다. 이 프로젝트를 위해 한동안 뛰어다녔었기에 그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 일을 계기로 '유럽에도 언제든 이와 같이 그 어떠한 한지든 모두 구할 수 있는 보급처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라파엘로 케이스 급은 아니지만 복원 작업에서 종이 선별이 긴급하게 진행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해당 경우는 종이의 성질은 알고 있지만 루브르 박물관이 구입한 목록에 없는 종이들입니다. 그들은 한국에 주문해서 결제가 마무리된 상태에서 이미 만들어져 있다면 최소 몇 주 또는 특별 제작을 해야 한다면 최대 몇 달을 기다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보급처는 마레지구에서 바로 복원에 필요한 모든 가능성의 재료를 보관하고 있고 걸어서 주요 파리 박물관 어디든 20~30분 안에 조달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입니다.
-당시 한지가 가장 적합한 복원 재료라는 것은 어떻게 판단한 것입니까?
루브르 박물관에서는 « 내일을 위한 어제의 종이 » 라는 연구 프로젝트가 있었고 한지 견본에 대한 현장에서의 공정에 대한 상세한 조사가 이루어 졌습니다. 그 후 한지가 루브르 박물관내 문화재 복원 종이로써 매우 적합하다는 판정이 나왔습니다.
-루브르 박물관에서도 이 보급처의 존재를 알고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루브르 복원실에서 이 보급처 설립에 많은 도움을 주었고 자주 회의를 가집니다.
-현재 루브르에서는 한지를 얼마나 활용하고 있습니까?
지금은 한지를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일본 화지를 주로 사용했지만, 현재는 한국 한지와 일본 화지의 구입 및 사용 비율이 약 50대 50 정도입니다. 2014년 종이 연구를 시작해서 2017년부터는 꾸준히 쉬지않고 복원되고 있습니다. 루브르에서도 두 재료를 구분해 각각의 특성에 맞게 활용하고 있습니다.
-현재 루브르에서는 한국 한지와 일본 화지를 함께 사용하고 있다고 하셨는데, 두 종이의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한지와 화지는 초지하는 방식이 다릅니다. 한지는 외발이라는 기술로 만들어진 종이로써 섬유가 세로 그리고 가로로 이어져 직물과 같은 우물정자의 패턴으로 가로 세로 모두 질깁니다. 화지는 섬유가 쌍발이라는 기술과 비슷한 방식으로 섬유가 세로로만 질깁니다.
-현재 파리 보급처에는 얼마나 다양한 한지를 갖추고 있나요?
현재 선별된 약 10 곳의 한지가 있으며, 이 종이들은 크기, 평량, 두께에 따라 세분화돼 있고, 제작 공정과 도구의 쓰임새에 차이에 따라서도 구분됩니다. 또 복원용 외에도, 서화용, 사진 인화용 등 쓰임새가 모두 다르기 때문에 용도별로 카테고리를 나눠 보관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일본 화지는 많이 쓰여져 복원지의 종류가 다양하고 공급과 복원 체계도 잘 갖춰져 있습니다. 필요한 종이를 유럽 내에서는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고, 대체할 수 있는 제품도 많습니다. 그래서 복원 현장에서 활용하기가 수월한 편입니다. 한지는 지역마다 특성이 매우 뚜렷합니다. 문경 한지와 괴산 한지, 안동 한지, 전주 한지…등 성질이 모두 다릅니다. 그래서 같은 한지라도 복원 대상에 따라 적합한 종이를 선택해야 합니다. 복원 체계에서 한지 관리가 이런 부분에서 쉽지 않지만, 오히려 복원에서의 한지의 가장 큰 장점이기도 합니다.
-이곳에서 취급하는 한지는 어디에서 공급받고 있습니까?
문경과 괴산, 안동 등 한국 전국에서 만들어지는 여러 한지 산지에서 공급받고 있습니다. 국가무형문화재와 그 수준에 맞는 종이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지역마다 한지의 특성과 장점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용도에 맞춰 선택하고 있습니다.
- 한지를 프랑스까지 가져오는 일도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굉장히 어려웠습니다. 복원용 한지는 접어서도 안 되고, 말아서도 안 됩니다. 조금이라도 구겨지거나 말려도 복원 재료로 사용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항상 완전히 펼친 상태를 유지해 운반해야 합니다. 한지가 손상되지 않도록 두꺼운 합판 등에 압착 고정해 가져와야 하며 큰 종이일 경우 특수화물로 가져와야 합니다. 운반 자체 비용이 비싸고 원활하지 않은 점이 있습니다.
-이 공간은 어떤 목적으로 운영하고 있습니까? 워크숍이나 교육 프로그램도 진행하나요?
현재 루브르 박물관과 오르세 미술관, 프랑스 박물관 관련 기관의 복원 작업에 필요한 한지를 제공할 수 있도록 운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지를 보급하는 것뿐 아니라, 한지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떤 도구가 사용되는지를 알리는 교육 공간으로 운영하려고 합니다. 이전에는 프랑스한인유학생회에서 방문해 한지 제작 과정과 관련 도구들을 살펴본 적이 있습니다. 한지 제작에 사용하는 발과 닥나무 원료를 직접 보여주고, 실제로 복원 재료로 사용되는 종이를 만드는 과정이 담긴 영상도 상영하고 상영된 공정으로 만들어진 실물도 즉석에서 만져보며 확인했습니다. 그 외에도 프랑스 복원가들이 이곳에 와서 한지의 종류와 특성을 살펴보고, 제작 원료, 도구 그리고 활용 방법을 사진으로 기록해 가기도 했습니다. 한지를 알리고 체계적으로 차세대 복원학과 학생들이 현장에서 제대로 활용할 수 있도록 정보를 공유하고 교육하는 장소로도 만들고 싶습니다.
-누구나 방문할 수 있나요?
물론입니다. 한인 어린이와 청소년, 한글학교 학생들에게도 좋은 배움의 공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방문을 원한다면 미리 연락하고 견학할 수 있습니다. 한지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직접 보고 전통 재료와 도구를 접하는 것은 차세대에게 의미 있는 경험이 될 것입니다. 한지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다면 그 이후에는 세계 각국의 사람들에게 한지를 알리는 교육 활동이 더욱 필요해질 것입니다. 한인뿐 아니라 현지인과 세계 여러 나라의 사람들이 한지를 직접 보고 배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파리 마레 지구에 위치한 한지 소장 보급처에서… 한지 제작에 필요한 도구들이 전시되어 있다.
고려시대에서 부터 조선 말기에 이르기 까지 모든 종이 문화속에는 '장흥고(長興庫)'라는 관청이 있었습니다. 제대로 검증된 종이를 보관하고 필요한 곳에 공급하는 역할을 하던 곳입니다. 문화와 기록도 결국 종이가 있어야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아무리 좋은 기술이 있어도 재료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곳을 믿을 수 있는 한지 수장고인 '유럽의 장흥고' 같은 공간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복원가께서 생각하는 한지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엇입니까?
치수안정성이라는 물질적 성질도 매력도 있지만 저는 한지의 은은한 색감이라고 생각합니다. 한지는 단순히 흰 종이가 아닙니다. 종이마다 미묘하게 다른 색을 지니고 있습니다. 서양에서 말하는 새하얀 흰색과 한지의 흰색은 다릅니다. 한지는 부드럽고 은은한 색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외국인들은 이런 색을 보고 '우아하다(Elegant)' 그리고 그래이스 라는 표현을 많이 합니다. 색감 하나만으로도 한지가 주는 분위기가 압도한다는 것이죠. 그래서 고풍스러운 예술품 종이의 색감과 일치할 때가 많습니다.
-한지는 앞으로 어떤 분야에서 더 활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십니까?
활용 가능성은 무궁무진합니다. 순수 미술에서 패션 그리고 인공위성 날개 경첩 부분 또는 배터리와 같은 최첨단 분야에 이르기까지 활용가능성이 다양해지고 있고 일상적으로는 보안 기능이 필요한 특수 소재나 벽지, 인테리어 분야에도 충분히 활용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 종이는 ‘미래에서 온 종이’ 라고 말하고 싶어요. 근대에 이르러서 우리 스스로가 한지를 지금껏 종이라는 카테고리 안에만 제한하려 했습니다. 이제 그 틀을 깨야 합니다.
-한지를 통해 프랑스인들에게 가장 전하고 싶은 한국의 가치는 무엇인가요?
저는 한지를 통해 '나누고 싶다'는 마음이 큽니다. 종이만 공급하는 게 아니라 그러기 위해서는 공부해야 할 게 많습니다. 그들이 원하는 게 무엇이고 이 종이가 어떠한 도움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한 부분입니다. 그래야 제안해 볼 수 있어요. 해보지 않고서는 해보라고 권할 수 없습니다. 한지를 유럽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그들이 이 재료를 어떻게 해석하고 활용할지 보는 것이 무척 궁금합니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이렇게 사용해 왔지만, 무조건 우리 전통적인 응응법이 옳다고 하기 보다는 문화재 복원과 같은 사례와 같이 한국에서만 머무는 한지가 아닌 세계 상대로 다른 문화에서의 한지 응용법을 확인하고 싶어요. 다른 문화권에서는 또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활용할 수도 있잖아요. 저는 그런 가능성과 미래에 응용법을 공유하고 싶습니다.
<파리광장편집부>
관련자료
-
다음
-
이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