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조력 사망 법안 최종 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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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증·불치 환자 대상 안락사·조력 사망 허용… 하원 최종 가결
엄격한 요건 아래 생의 마지막 선택 보장… 프랑스 사회 찬반 논쟁

하원 본회의장에서 의원들이 역사적인 표결을 진행했다 © Le Figaro
프랑스 하원이 생애 말기 환자의 안락사와 조력 임종을 허용하는 ‘조력 사망(aide à mourir)’ 법안을 최종 가결했다. 의회 해산으로 중단됐다가 1년 반 만에 재개된 우여곡절 끝의 입법 절차는 마침내 마무리됐다. 하원은 16일 오후 찬성 291표, 반대 241표, 기권 29표로 법안을 통과시켰다.
새로운 자유의 확대인지, 인간 생명과 존엄에 대한 근본적 전환인지에 대한 논쟁 속에서 이번 표결은 프랑스의 생애 말기 정책의 중대한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엠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약속했던 새로운 ‘프랑스식 생애 말기 모델’이 현실화된 것이다. 안락사와 조력 사망을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이 법안은 지난해부터 하원에서 네 차례에 걸친 심의와 표결을 거친 끝에 최종 가결됐다.
마크롱 대통령은 표결 직후 “2022년 나는 프랑스 국민과 함께 이 길을 열겠다고 약속했다”며 “엄숙함과 겸허함, 그리고 민주주의에 대한 온전한 존중 속에서 그 약속을 지켰다”고 밝혔다.
역사적 표결 현장 “나는 그 자리에 있었다”
본회의장 방청석에서는 이번 사회적 논쟁에 깊이 관여해 온 인사들이 소감을 밝혔다. 특히 평생의 정치적 과업 가운데 하나로 법안 도입을 추진해 온 올리비에 팔로르니 의원이 참석했고, 관련 시민단체 관계자들과 함께 2016년 ‘사망 시까지 지속되는 심층 진정’ 제도를 도입한 법률의 공동 작성자인 알랭 클레이스도 자리를 함께했다. 이들은 차분하고 절제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된 역사적인 본회의를 지켜봤다.
다만 하원 본회의장 의원석은 장시간 빈자리가 이어지는 등 다소 한산한 모습을 보였다. 정부 측 각료석은 더욱 비어 있었다. 로랑 파니푸스 의회담당 장관만이 참석했고, 정부를 대표해 법안 심의에 참여하도록 지정된 카미유 갈리아르미니에 자치·돌봄 담당 특임장관이 함께했다. 반면 스테파니 리스트 보건부 장관은 참석하지 않았다. 여러 장관이 이번 법안에 대해 “개인적으로 불편함을 느낀다”고 밝혀온 만큼, 이를 두고 정부 내부의 신중한 분위기를 보여주는 것이라는 해석이다.
성인 환자·불치 질환자 대상…엄격한 요건 적용
새 법안에 따른 조력 임종 권리는 제한적으로 적용된다. 대상은 성인 환자 가운데 치료가 불가능하고 생명을 위협하는 질환을 앓고 있으며, 자신의 의사를 ‘자유롭고 충분한 판단 아래’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다.
우선 의사가 신청자의 자격 요건을 검토하고, 이후 여러 의료진이 참여하는 공동 심의 절차를 통해 기준 충족 여부를 판단한다. 최종 결정은 담당 의사가 내리게 된다. 환자는 절차 진행 중 언제든 신청을 철회할 수 있다. 원칙적으로는 환자 본인이 직접 치명적 약물을 투여하지만, 신체적으로 실행이 불가능한 경우에는 의사나 간호사가 대신 투여할 수 있다.
시행까지 헌법위원회 심사 등 두 가지 관문 남아
그러나 법안이 실제 시행되기까지는 아직 중요한 절차가 남아 있다. 세바스티앙 르코르뉘 총리는 상원의장 제라르 라르셰(공화당 우파)와 마찬가지로 헌법위원회에 법안 심사를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특히 우파 진영을 중심으로 이어지고 있는 반대 의견을 고려한 조치다. 정부 대변인 모드 브레종은 이번 결정이 “대통령과의 협의를 거쳐 이뤄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헌법위원회는 오는 8월 15일 전후 결정을 내릴 것으로 예상된다. 위원들은 의료진이 조력 임종을 승인한 뒤 환자에게 부여되는 최소 이틀간의 숙고 기간 등 일부 조항이 “개인의 자유와 인간 존엄성의 원칙”에 부합하는지를 판단하게 된다. 헌법위원회 심사가 끝나면 대통령은 법안을 공포할 수 있다. 이후에는 실제 시행을 위한 세부 규정인 시행령 제정 절차가 이어진다. 법안 반대 측에서는 시행령이 제도의 “일탈” 가능성을 막는 장치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팔로르니 의원에게 쏟아진 박수… "법을 기다리다 세상을 떠난 환자들"
조력 사망 제도 도입을 둘러싼 논의는 수년간 이어졌다. 그 과정에서 하원 해산과 상원의 강한 반대라는 정치적 장애물도 넘어서야 했다. 본회의장에서 여러 차례 박수를 받은 팔로르니 의원은 “많은 환자가 이 권리를 누려보기도 전에 세상을 떠났다”며 “지금 이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그분들과 그들의 가까운 사람들, 가족들”이라고 말했다. 이 법안 찬성 측은 중증·불치 환자의 자기결정권과 고통에서 벗어날 권리를 강조하는 반면, 반대 측은 생명 경시와 취약계층에 대한 사회적 압박, 완화의료 부족 속에서 죽음이 선택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2022년 말 무작위 추첨으로 구성된 시민협약(Convention citoyenne) 참가자 20여 명도 이날 하원 청사인 부르봉궁을 찾았다. 이들은 수년간 이어진 논의가 결실을 맺는 순간을 함께 지켜봤다. 시민협약 참가자 모임인 ‘레 184(Les 184)’의 대표 나탈리 베리오는 감격 속에 “3년이었는지, 4년이었는지 이제는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환경당 소속 상드린 루소 의원도 “오늘 같은 날에는 국회의원으로서 우리의 표결이 단순히 법을 만드는 행위를 넘어서는 순간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자신이 과거 자살을 선택한 어머니의 곁을 지켰던 경험을 언급하며 추모의 뜻을 밝혔다.
프랑스, 안락사·조력 사망 허용 국가 대열 합류
이번 법안 통과로 프랑스는 안락사 또는 조력자살을 허용하는 유럽 내 소수 국가 대열에 합류하게 됐다. 현재 유럽에서 관련 제도를 도입한 국가는 네덜란드(2002년), 벨기에(2002년), 룩셈부르크(2009년), 스페인(2021년), 오스트리아(2021년) 등이며, 스위스도 포함된다. 다만 스위스는 1942년부터 시행된 형법에 따라 조력 사망만 허용하고 있으며, 의료인이 직접 생명을 종료시키는 적극적 안락사는 인정하지 않고 있다. 프랑스의 이번 결정은 단순한 의료 제도의 변화를 넘어, 인간의 존엄과 죽음을 둘러싼 사회적·윤리적 기준을 다시 설정하는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현 경 기자 dongsimjeo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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