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아틀리에 탐방] 사라지는 시간이 머무는 공간-하유미 작가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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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유미 작가
작가 하유미의 작업은 집이라는 익숙한 형태를 빌리지만, 그것은 현실의 건축이라기 보다 오롯이 작가의 감정과 시간, 기억이 뒤엉킨 하나의 구조에 가깝다. 계단이 이어지고 내부와 외부의 경계가 모호한 그의 화면은 네덜란드의 판화가 에셔(M. C. Escher)를 떠올리게 하는 기묘한 공간감을 지니면서도, 동시에 개인의 내면에 더 가까이 붙어 있다. 그에게 예술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방식이며, 사라지는 시간을 붙잡아 다시 머무르게 하는 구조이기도 하다. 알파벳과 문장, 요리의 레시피까지 공간으로 전환하는 최근의 작업은 삶의 순간들을 하나의 세계로 조직하려는 시도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하유미의 집들은 완결된 설명을 거부한 채, 이해와 비이해 사이의 어떤 상태로 존재한다. 구조적으로는 페르낭 레제(Fernand Léger)의 기계적 리듬처럼 평면 위에 질서가 세워져 있지만, 그 질서는 고정된 의미가 아니라 계속해서 흔들리고 확장되는 감각에 가깝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그는 조용히 자신만의 세계를 확장해 나가고 있다. 머무를 수 있으면서도 완전히 도달할 수 없는 세계를 끊임없이 그려내는 방식으로, 외부와의 단절이 아닌 자신이 머물 수 있는 세계를 찬찬히 구축해 나가는 작가 하유미를, 그의 감각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그의 집에서 만났다.
-작가로서의 작업 배경과 현재의 삶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달라.
미술학교를 나오지 않고, 독학으로 그림을 배웠다. 프랑스에서 남편을 만나 결혼하고 예술가로서 안정감을 찾았다고 할 수 있다.
-미술교육을 받기 보다 독학의 길로 이어지게 된 과정이 궁금하다.
고등학교 졸업 후 사디(SADI, 삼성 아트 디자인 인스티튜트)에 입학했다. 중학교 때부터 아버지의 권유로 진학하게 되었다. 그림을 좋아했지만 작가보다는 보다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디자인 공부를 권유 받은 결과이다. 그러나 개인적인 사정으로 두 차례 휴학을 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학교를 그만두게 된 것이다.
-학교를 떠난 이후 프랑스로 오기까지의 과정은 어땠나 ?
바로 유학 온 것은 아니다. 방황의 시간이 있었다. 뉴욕을 방문해 미술관과 박물관을 돌아다니며 많은 작품을 접했다. 이후 우연히 부모님과 함께 떠난 이집트와 그리스 여행에서 우연히 프랑스로 미술 유학을 준비하는 사람을 만났다. 그 인연을 계기로 몇 달간 프랑스를 경험하게 됐다. 그 과정에서 나와 너무 잘 맞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 본격적으로 프랑스 유학을 준비해 2006년 9월 베르사유 보자르에 입학을 하게 됐다. 그런데 학교 수업 첫 날 감정적으로 (다시) 큰 어려움을 겪었고, 수업 도중 자리를 떠난 뒤 다시 돌아가지 않은 채 학교를 그만두게 됐다.
-사람과의 관계나 사회적 환경이 작업을 지속하는데 어떤 영향을 미쳤나 ?
어린 시절에는 큰 문제가 없었지만, 사춘기를 지나면서 점점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맺고 대화하고 하는 일들이 쉽지 않았다. 대화 자체가 부담이 되었고, 점점 학교생활도 힘들어졌다. 결국 부모님 모르게 한 차례 휴학을 했다. 하지만 끝까지 숨길 수는 없었다. 사디의 경우1년 휴학 후 부모님의 권유로 다시 다니게 됐는데, 사람들 사이에 있는 자체가 너무 힘들어서 결국 다시 휴학을 했다. 부모님에게는 순수회화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동으로 학교를 완전히 그만두게 된 것이다. 베르사유 보자르 역시 입학 첫 날 그만 뒀다.
-프랑스에 정착한 이후 작업은 어떻게 이어졌나?
혼자 고립될 수는 없다는 생각에 어학원에 등록했다. 프랑스어를 배우며 파리 스튜디오에서 개인적으로 그림 작업을 이어갔다. 그 시기에 현재의 프랑스인 남편을 만나게 되었고, 2009년에 결혼을 했다.
-지속적으로 작업을 이어가는 데 있어, 작가에게 예술은 어떤 의미인가?
예술은 나를 존재하게 하고, 내가 의지할 수 있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표현의 방식일 수 있지만, 나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생존 방식이다. 돈을 벌거나 유명한 작가가 되지 못하더라도 계속 해야만 하는 일이다. 내면의 안정감을 찾고, 스스로를 존재하게 만드는 근거이다. 또, 모든 예술 작품이 그렇듯이, 예술은 이해되지 않은 상태로 연결된 느낌, 그런 부분이 나하고 맞는 같다. 내 작품 역시 항상 모든 사람들이 다 이해할 수 없어도 또 (각자 다른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는 부분도 있고, 이런 (이해와 비이해가 공존하는 상태) 연결된 상태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프랑스에서 외국인으로 작가 활동을 시작하는 과정은 어땠나 ?
처음 전시할 곳을 찾는 과정에서 살롱 앙데팡당을 알게 되었고, 참가비를 내고 전시에 참여할 수 있었다. 어느 날 우연히 한 프랑스 관객을 통해 한국 작가들의 모임인 아작(AJAC)을 알게 되었고, 지원 끝에 합격하여 2012년 부터 회원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House of Sentence, Digital drawing 2026
하나의 문장을 이루는 알파벳을 읽히지 않는 구조로 변형하고, 그 구조를 집의 형태로 재구성한 작업이다.
-현재 작업의 전반적인 방향과 주요 특징을 설명해달라.
기본적으로 집에서 작업하며, 하고 싶은 주제를 중심으로 작업을 이어간다. 아크릴을 주로 사용하고 인물, 정물 등 다양한 주제를 다뤄왔다. 어느 순간부터 ‘집’을 모티브 삼아 모든 작업을 연결시키고 있다.
-‘집’이 작업의 중심 모티브가 된 계기는 무엇인가?
그 이유에 대해 스스로도 많이 고민해봤다. 나에게 집은 혼자 있는 공간이면서 가장 편안한 상태를 느끼는 장소다. 이전에는 자화상을 통해 자신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방식으로 작업했지만, 점차 집 안으로 숨어있는 모습일 것이다. 결국 집은 나의 상태를 나타낼 수 있는 적합한 구조라고 생각한다. 집을 기준으로 안과 밖이 동시에 존재하며, 그 안에 숨을 수도 있지만, 완전히 단절되지는 않은 상태, 즉 일정한 거리감을 유지하는 중간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집을 바라보는 시선이 독특하다. 외부의 시점으로 그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
작업에서 그리는 집은 내부가 아니라 외부에서 바라본 모습이다. 집 안에 숨어 있으면서도 세상과 완전히 단절되지 않은 상태,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는 감각을 표현한 것이다.
-그림을 시작하게 된 계기와 어린 시절의 경험이 궁금하다.
엄마와 이모들이 모두 미대를 나왔다. 집에 화집이 아주 많았다. 부모님이 두 분 모두 일을 하셔서 어린시절 혼자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았는데, 항상 화집을 보면서 지냈다. 화집을 보고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그림이 너무 좋았다. 혼자 보고 그리며 놀았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그림을 그려야 겠다고 생각했고, 다른 선택을 고민해본 적은 없던 거 같다. 오히려 그림을 그리지 않으면 더 불안하다.
-여러 매체 중 회화, 특히 ‘그림을 그린다’는 방식에 집중하는 것처럼 보인다,
세상에서 내 존재의 방식을 찾는 거 같다. 나에게 ‘그림을 그린다’는 행위가 가장 맞아 떨어지는거 같다. 내가 원하는 세계 속에 (내가) 들어가는 느낌이다. 내가 만든 집의 구조 안에 머무를는 것이 안정감을 주고, 그래서 기본적으로는 내 마음에 드는 작품을 하려고 노력한다.
-작품이 평면적이면서 묘사적이고 장식적이다. 작업 과정과 이미지의 출발점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
먼저 디지털 작업으로 전체적인 스케치와 구성, 색감을 정리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후 그 이미지를 캔버스에 옮긴다. 작품 특성상 시간도 절약되고 전체 구성을 잡는 데에도 적합하다. 이미지, 패턴, 색감, 아이의 장난감처럼 일상에서 마주하는 모든 요소들 중 나에게 와닿는 것들이 영감을 준다.
-꾸준히 집을 모티브로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공간과 관련이 깊은데, 최근 진행 중인 작업의 개념과 확장 방향을 설명해달라.
최근에는 알파벳을 공간으로 바꾸는 작업을 하고 있다. A, G, Q 같이 알파벳으로 구성된 집이다. 책(소설, 에세이, 시 등)을 읽으며 집과 연계된 문장을 선택하고, 한 작품에는 하나의 문장이 들어간다. 이 문장은 프랑스어 일 수도 있고, 한국어 문장을 프랑스어(알파벳)로 바꿔 공간을 구조화한 것이다. 이렇게 문장구조로 된 집을 100점 정도 완성하는 것이 목표다. 이전 작업에서는 요리 과정을 공간으로 변환했다. 요리 레시피, 예를 들어 땅콩 호박 수프를 만드는 과정을 공간으로 표현한 것이다. 코로나 시기 가족들을 위해 매일 세 끼를 요리하면서, 그 시간들과 사라지는 시간들 자체가 너무 아까웠고, 가족을 위해 요리하는 것이 의미도 있다고 생각했다. 내 삶 자체를 구조화하고 싶고, 그것을 그림으로 남기고 싶었다.
-알파벳 문장이나 요리 레시피를 공간으로 전환한다는 개념이 흥미롭다.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
시간을 공간화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사라지는 시간들을 머무르게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하루하루 삶이 소중하고, 사라지는 순간들이 아쉽고 그 안에 다시 들어가고 싶고 머무를 수 있는 그런 구조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한 거 같다. 결국 사라지는 것들, 일종의 불안(정)한 것들을 안정된 형태(구조)에 담아내는 거다. 그래서, 단순히 기록하는 것을 넘어서, 그 안에 다시 들어가고 싶다는 마음으로 이런 작품을 하게 됐다.
-집의 형태나 구조를 구성할 때 기준이나 감각은 무엇인가 ?
특별히 정해진 선호는 없다. 즉흥적이고 상황마다 다르다. 작업을 하면서 어떤 공간이 나올지 나 자신도 모른다. 왜냐면, 작업을 시작하며 나에게 들어오는 이미지들이 감정 상태에 따라 상황마다 다르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집들의 모양이나 형태도 당시 내 취향의 변화에 따라 달라진다고 할 수 있다.
-공간을 다루지만 인물이나 생명체가 등장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
스스로도 생각해본 질문이다. 아마도 나에게는 집만 그리는 방식이 가장 안정적인 것 같다. 인물이 직접적으로 보이거나 어떤 의미가 직접적으로 읽히고 드러나는 방식은 나하고 안 맞는 것 같다. 일정부분 이해되지 않는 상태로 있는 것이 더 편안하다.
-영향을 받았거나 공감하는 작가가 있다면 누구인가 ?
바스키아(Jean-Michel Basquiat) 좋아한다. 그의 자유로움, ‘어떻게 그림을 이렇게 그릴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정도로 강렬했다. 중학교 때 처음 봤던 그 느낌을 잊을 수 없다. 화면에 그림도 막 그리고 글도 쓰는 방식이 너무 멋있었다. 나와는 정반대의 작품 에너지를 느꼈다. 모든 예술 작품이 다 그렇듯이, ‘이 사람이 왜 이렇게 그렸는지, 무엇을 표현했는지 완벽히 이해할 수 없는데, 이해되지 않은 상태로 연결된 느낌, 그런 부분이 나하고 맞는 같다. 이 외에도, 핸리 다져(Henry Darger)를 좋아한다. 완전 아웃사이더 작가다. 경비원으로 살면서 거의 누구와도 대화하지 않고 평생을 고립된 상태로 살았지만, 그가 살던 작은 방에는 수만장의 삽화, 수채화, 그리고 자기만의 판타지 세계를 담은 소설을 만들어냈다. 작은 공간을 자기만의 세계로 만든 작가다. 나는 그 작가가 개인적으로 너무 행복했을 거 같다. 자기가 만든 세상속에 완전히 들어가서, 나도 그런 방식의 삶을 동경한다. 자기만을 위해 그렸지만, 너무 순수하다. 작품이 대가의 느낌과는 다를 수 있지만, 나는 그런 것이 더 깊게 와닿았다. 그 작가도 사람들과의 소통이 어려웠고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며, 자기만의 공간에 들어가 숨어 있으면서,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고 그 세계에 들어가 살고 싶어하는 그런 것들이 내가 꿈꾸는 방식, 수많은 집들을 그려서 그 안에 들어가고 싶은 그런 느낌과 닮아 있다.
-앞으로 작업을 통해 이루고 싶은 방향이나 목표는 무엇인가 ?
이런 집들을 아주 많이 그려서, 그 안에 (둘러싸여) 머무는 상상을 자주 한다. 나는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면서 가장 큰 행복감을 느끼는 사람이다.
-일상과 작업은 어떻게 병행하고 있나 ?
주로 저녁시간을 이용해 작업한다. 매일 꾸준히 작업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작업을 계속하게 만드는 가장 근본적인 감각은 무엇인가?
나에게 정말 필요해서 그린다. 말보다 그림 그리는 행위가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가장 분명하게 느끼게 한다.
<현 경 기자 dongsimjeo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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