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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암의 한국 명시 산책] 문인수 <채와 북 사이, 동백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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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와 북 사이, 동백 진다 

                                                                                                      -문인수                                                


지리산 앉고, 

섬진강은 참 긴 소리다. 

저녁노을 시뻘건 것 물에 씻고 나서 


저 달, 소리북 하나 또 중천 높이 걸린다. 


산이 무겁게, 발원의 사내가 다시 어둑어둑 

고쳐 눌러앉는다.



이 미친 향기의 북채는 어디 숨어 춤추나 


매화 폭발 자욱한 그 아래를 봐라 


뚝, 뚝, 뚝, 듣는 동백의 대가리들. 

선혈의 천둥 

난타가 지나간디

                   


-문인수 시집『동강의 높은 새』(세계사,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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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사에서 그 관객 수를 몇 십만 단위로 처음 끌어올린 게 소리꾼 이야기를 주제로 한 임권택 감독의『서편제』가 맞는지 모르겠다. 나는 오늘 시 이야기의 마당을 매화가 만발하고 보름달이 두둥싯 떠오른 하동 섬진강가 소리마당으로 펼쳐야 하겠다. 시인에게 제11회 김달진 문학상을 안겨다준「채와 북 사이, 동백 진다」는 문인수 시의 특장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작품이다. 그가 부르는 이 노래는 미세한 아름다움을 덧칠하는 게 아니라 장쾌한 스케일의 거친 묘사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깊은 서정의 아우라를 가득 품고 있다. 시「채와 북 사이, 동백 진다」에서 중천에 높이 걸린 달은 소리북이요, 거대한 지리산은 소리북을 치는 사내로, 섬진강은 길게 번져나가는 소리로 그려내고 있다. 이 얼마나 큰 소리마당인가! 그러면 어디 숨어 춤추는 미친 향기의 북채는 무엇이고, 선혈의 천둥으로 뚝, 뚝, 뚝 듣는 동백의 대가리들은 또 무엇인가? 전자는 이렇듯 웅장하게 노래하는 문인수 시인이고, 후자는 그 노랫가락에 점점 깊이 물드는 귀명창의 독자인 우리들이라고 명명(命名)하면 어떻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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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이종암(mulgasarang@hanmail.net) 

1999년 동인지《푸른시99》로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고, 시집으로《물이 살다 간 자리》로 등단. 발간한 시집은《저, 쉼표들》,《몸꽃》,《꽃과 별과 총》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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