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칼럼 분류

[이종암의 한국 명시 산책] 서정주의 밀어(密語)

작성자 정보

  • 최고관리자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본문

密語


                                 -서정주


순이야, 영이야, 또 돌아간 남아.


굳이 잠긴 잿빛의 문을 열고 나와서

하눌가에 머무른 꽃봉오릴 보아라.


한없는 누에실의 올과 날로 짜 느린

차일을 물은 듯, 아늑한 하늘가에

뺨 부비며 열려있는 꽃봉오릴 보아라.


순이야, 영이야, 또 돌아간 남아.


저,

가슴같이 따뜻한 삼월의 하늘가에

인제 바로 숨 쉬는 꽃봉오릴 보아라


 -『未堂 徐廷柱 詩全集 1』(민음사,1991)


-----------------------------------------------------------------------------------------------------------------

한국 시인부락의 족장 미당 서정주 시의 빼어남을 애써 달리 표현하여 무엇하랴. 그냥 눈과 입으로 미당의 시를 소리 내어 읽으며 그 가락과 서정을 내 몸에 담아두면 그만인 것을. 한국 시단에서 시의 리듬감과 서사적 성격을 이 양반만큼 높은 자리에까지 밀고 간 시인이 또 있을까. 시「密語」는 서정주의 2시집『귀촉도』맨 첫머리에 나오는 시편이다. 꽃봉오리를 받아내는 삼월의 봄 하늘을 “한없는 누예실의 올과 날로 짜 느린/체일을물은듯, 아늑한 하늘가”로 묘사하는 것 하며, 그 하늘가에 피어나는 꽃봉오리를 “굳이 잠긴 잿빛의 문을 열고 나와서” “뺨 부비며 열려있는” “인제 바로 숨 쉬는” 것으로 그려내는, 또 이 모든 것을 우주의 비밀스런 언어, 즉 밀어(密語)라고 지칭하는 솜씨는 가히 일품(一品)이다. 그리고 “순이야, 영이야, 또 돌아간 남아.”에 일어나는 음악성은 또 어떠한가. 나도 꽃 피는 삼월의 하늘을 올려다보며 내 옛 동무들의 이름을 불러본다. 태봉아, 팔수야, 또 명자야, 숙아!



c5986a45c87853c47572ab256216bd70_1770659828_0666.jpg

시인 이종암(mulgasarang@hanmail.net) 

1999년 동인지《푸른시99》로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고, 시집으로《물이 살다 간 자리》로 등단. 발간한 시집은《저, 쉼표들》,《몸꽃》,《꽃과 별과 총》등이 있다. 

관련자료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