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문화,예술 [화가 아틀리에 탐방] 멜랑콜리를 그리는 화가 김나령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6-08-10 21:42 조회 123 댓글 0

본문

'기억은 풍경이 되고 감정은 여백이 되다'

6596d439d1e34ba6cdacbb693fb4350f_1786365354_7736.png
김나령 작가                                                                                                                                                 © Audrey Jean


누군가는 얼굴을 통해 감정을 읽고, 또 다른 누군가는 풍경 속에서 자신의 기억을 발견한다.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청년 작가 김나령은 작품 속 인물의 얼굴을 의도적으로 감추거나 뒷모습으로 표현한다. 특정한 인물을 이야기하기보다 누구나 자신의 경험을 투영할 수 있는 보편적인 감정을 담아내기 위해서다. 코로나19 시기 프랑스의 작은 도시에서 홀로 보낸 시간, 가족과의 이별, 그리고 레지던시에서 마주한 자연은 그의 작품 세계를 '고독'에서 '멜랑콜리'로 확장시켰다.


작가에게 멜랑콜리는 일시적으로 스쳐 지나가는 외로움이 아니라 삶 속에 오래 남아 있는 상실의 감정이다. 사진으로 시작한 기억은 화면 위에서 다시 해체되고 재구성되며, 현실의 풍경은 상상의 공간으로 변모한다. 여기에 감정을 숨기면서도 동시에 발산하는 상징인 '다면체' 오브제가 더해져 그의 독창적인 회화 언어를 완성한다.


《파리광장》은 멜랑콜리와 기억, 상실과 풍경을 자신만의 회화 언어로 풀어내고 있는 김나령 작가를 만나 작품 세계와 그 철학을 들어봤다.


-먼저 본인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프랑스 파리를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회화 작가이고, 2022년 프랑스 국립미술학교인 보자르 드 부르주(École nationale supérieure d'art de Bourges)에서 학사부터 석사 과정까지 모두 마쳤습니다. 현재는 프랑스를 중심으로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으며, 청년작가협회 소속으로 다양한 전시와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회화를 중심으로 작업하고 있습니다.


-생명공학을 전공했는데, 어떻게 지금은 그림을 그리게 되었나요?

어릴 때부터 화가를 꿈꿨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생명공학을 전공하며 그 분야에 큰 흥미를 느꼈지만, 대학 시절 사진과 예술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새로운 세계를 경험했습니다. 특별한 계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유학을 결심했고, 프랑스 미술학교에 진학했습니다. 생명공학과 회화는 다른 분야이지만, 그 중심에는 인간에 대한 관심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과거에는 과학을 통해 인간을 이해하려 했다면, 지금은 회화를 통해 인간의 감정과 심리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매체는 달라졌지만, 인간을 탐구하고 이해하려는 관심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6596d439d1e34ba6cdacbb693fb4350f_1786365700_5664.png
Sentir l'aube 2025, huile sur toile, 130x194cm


-처음부터 화가가 되겠다는 목표가 있었던 건 아니었나요?

처음에는 그림을 전문적으로 배운 적도 없고 미술에 대한 기초도 거의 없는 상태에서 프랑스 미술학교에 입학했습니다. 1학년 때는 프랑스어도 서툴러 수업을 따라가기 어려웠고 교수님들에게 많이 지적을 받았지만, 친구들에게 하나씩  배우고 도움을 받아 실력을 키워 나갔습니다. 2~3학년이 되면서 그림 그리는 즐거움을 느끼기 시작했고, 화가를 목표로 했다기보다 배우고 도전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지금의 작업 세계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작품 속 인물들이 얼굴 대신 뒷모습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제 작품 속 인물은 대부분 제가 직접 촬영한 주변 사람들을 바탕으로 하지만, 특정 인물로 인식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얼굴이 드러나면 작품이 개인의 이야기로 한정될 수 있기 때문에 뒷모습이나 얼굴이 보이지 않는 구도를 자주 선택합니다. 저는 표정보다 몸짓과 환경이 더 많은 감정을 전달한다고 생각하며, 관람자가 자신의 경험과 기억을 자유롭게 투영할 수 있는 보편적인 이미지를 만드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작가 노트에서 ‘멜랑콜리(Mélancolie)’와 ‘고독’을 중요한 주제로 언급하는데 이 감정들이 작품의 출발점이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프랑스 유학 시절 코로나19로 약 6개월간 혼자 지내면서 작업에 몰두했고, 그 시간을 통해 '멜랑콜리'라는 감정을 깊이 이해하게 됐습니다. 같은 시기 한국에 계신 조부모님을 잇달아 떠나보내며 상실의 경험도 겪었습니다. 이후 외로움과는 다른, 오래 남는 슬픔과 상실의 감정을 인간의 보편적인 경험으로 바라보게 되었고, 이를 논문과 작품의 핵심 주제로 꾸준히 탐구하고 있습니다.


-최근 작품에서는 인물뿐 아니라 풍경이 중요한 요소로 등장합니다. 풍경은 작품에서 어떤 의미를 갖고 있나요?

학교 시절에는 인물 중심의 작업을 했지만, 졸업 후 프랑스 생 레비 드 프로방스(Saint-Rémy-de-Provence) 레지던시에서 한 달간 머물며 작업한 경험을 계기로 풍경이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았습니다. 실제 풍경을 그대로 재현하기보다 기억과 상상력을 더해 새롭게 재구성하는 방식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이를 통해 최근 작품의 독특한 색감과 공간이 자연스럽게 형성됐습니다.


-작품 속 인물들은 관람객과 눈을 마주치지 않습니다. 관람객들이 작품 앞에서 어떤 감정을 느끼길 바라시나요?

특정한 감정을 강요하기보다, 관람객이 작품 앞에서 잠시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갖기를 바랍니다. 복잡한 감정 속에서도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여백을 만드는 것이 제가 작품을 통해 전하고 싶은 가장 큰 바람입니다.


-최근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다면체’ 오브제가 매우 인상적입니다. 이 오브제를 통해 전달하고 싶은 의미는 무엇인가요?

다면체는 석사 과정에서 직접 제작한 오브제로, 멜랑콜리라는 감정을 상징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감정을 숨기는 피난처이면서도, 날카로운 형태를 통해 내면의 감정을 밖으로 발산하는 매개체이기도 합니다. 즉, '숨김'과 '발산'이라는 상반된 의미를 동시에 담아낸 오브제입니다.

6596d439d1e34ba6cdacbb693fb4350f_1786365742_3483.jpg

다면체 회화 작품, Convergence under the polyhedron, 2022, huile sur toile, 195 x 114 cm


-요즘은 영상이나 설치 작업을 하는 젊은 작가들이 많은데, 회화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학교에서 비디오와 세라믹 등 다양한 매체를 경험했지만, 결국 가장 매력을 느낀 것은 회화였습니다. 회화는 할수록 더 배우고 성장하고 싶은 욕심이 생기는 작업이며, 저에게 가장 큰 즐거움을 주는 매체입니다. 앞으로도 회화를 중심으로 작업을 이어가며, 관람객이 오랫동안 머물러 감상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프랑스에서 활동하면서 한국에서 작업할 때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프랑스 관객들은 작가님의 작품을 어떻게 받아들이나요?

파리의 59 리볼리(59 Rivoli) 오픈 스튜디오에서 작업하던 시절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파리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관람객이 제 작품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처음 경험했는데, 그 순간 작품이 누군가의 감정을 깊이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실감했습니다. 그 이후 작업을 대하는 태도가 한층 진지해졌고, 작품을 그리는 것을 넘어 관객에게 어떤 감정과 울림을 전할 수 있을지 더욱 깊이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프랑스에서의 이 경험은 작가로서의 시선과 자세를 성숙하게 만든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현재 가장 집중하고 있는 작업과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최근에는 다면체 작업을 다시 시작해 집중하고 있습니다. 지난 6월 그리스 낙소스섬의 레지던시(La chapelle Saint Antoine Résidence)에 참여하면서 한 달 동안 다면체 작업에 몰두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사실 파리로 돌아온 뒤에는 다면체가 지닌 상징성이 너무 커서 다시 시작하는 것이 두렵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레지던시를 계기로 용기를 내 다시 작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다면체 작업을 더욱 깊이 발전시키고, 오랜 시간 꾸준히 탐구해 제 작업 세계를 더욱 확장해 나가고 싶습니다. 현재는 다른 일보다 작업에 집중하며 작품 활동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전시 계획은요?.

오는 9월에는 재불청년 작가협회의 정기전에 참여할 예정(출품작, Sentir l'aube, 2025, huile sur toile, 130 x 194 cm)입니다.  지난 5월에는 신진 작가들이 참여하는 시차전에도 참가했습니다. 앞으로도 다양한 전시를 통해 작품을 꾸준히 발표하며 활동을 이어갈 계획입니다.


생명공학에서 회화로 방향을 바꿨지만, 작가의 관심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인간'을 향해 있었다. 다양한 매체를 경험한 끝에 회화를 선택한 이유도, 다면체 작업을 다시 시작한 이유도 결국 인간의 감정과 심리를 더 깊이 표현하고 싶다는 고민에서 비롯됐다. 아직도 "부족하다"는 말을 반복하는 그의 모습에서는 작업에 대한 진지한 태도가 느껴졌다. 언젠가 관람객이 작품 앞에 오래 머물며 자신만의 감정을 마주하게 만드는 그림. 그 꿈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는 젊은 작가의 행보가 기대된다.


<파리광장편집부>

추천0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