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파리에 살아야 할 몇 가지 이유](50) '도둑맞은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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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6-08-10 20:55 조회 80 댓글 0본문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착륙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반사적으로 창밖에서 에펠탑의 불빛을 찾았지만, 이번에 나를 맞이한 것은 푸른 서해와 지루할 틈 없이 이어지는 산등성이였다. 5년 만의 귀국. 하루아침에 풍경도 관계도 모두 달라졌지만 변하지 않은 것은 지독한 폭염뿐이었다. 한여름 오후, 지하철 계단 몇 개를 오르는 것만으로도 인간이 세워놓은 위대한 계획이 얼마나 허술한지 알게 된다. 너무 더워서 계획했던 일을 이루기는커녕 무엇을 계획했는지조차 잊어버릴 때가 있다. 그 어느 도시보다 휴가가 절실해 보이는 날씨였지만 서울은 좀처럼 쉬지 않았다. 토요일에도, 심지어 일요일에도 택배 상자가 문 앞에 놓였고 사람들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다음 목적지를 향했다. 유럽인의 휴가에 비하면 한국인의 휴가는 터무니없이 짧다. 앉아서 책을 읽고 생각할 시간을 조금이라도 얻으려면 필사적으로 싸워야 한다. 이미 전쟁처럼 치열한 삶과 찜통 같은 더위 속에서 수영장과 시에스타, 긴 저녁 식사와 휴대폰 없는 시간으로 이루어진 다른 여름을 꿈꾸는 것은 다른 삶을 꿈꾸는 것만큼이나 거창한 일 같았다.
반면 파리의 8월은 매년 어김없이 찾아오는 거대한 공백의 시간이다. 단골 빵집이나 식당 문에는 몇 주 뒤 다시 만나자는 종이 한 장이 붙는다. 담당자가 휴가를 떠났다는 이메일이 잇따라 도착하고, 주변 사람들과의 약속은 자연스럽게 일상으로 복귀하는 9월의 la rentrée 이후로 밀려난다. 이 시기에는 경찰마저 잘 보이지 않는다. 처음에는 이 모든 것이 고장 나거나 마비된 것처럼 보였지만, 몇 번의 여름을 보내고 나니 오히려 이것이 제대로 작동하는 방식임을 깨닫게 되었다. 오래된 컴퓨터가 한여름의 열기 앞에서 느려지는 데 익숙한 주인처럼, 누구도 뜨거운 도시가 조금 느려지는 일을 문제 삼지 않았다. 말하자면 바캉스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노동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에 대한 사회적 합의다. 프랑스의 바캉스가 흥미로운 것은 휴식이 다시 잘 일하기 위한 충전으로만 설명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가족과 점심을 오래, 정말 오래 먹고, 책 몇 장을 읽다 잠들고, 해마다 같은 해변의 같은 마을로 돌아가 며칠 동안 아무것도 이루지 않는 데에도 별다른 명분이 필요하지 않았다. 프랑스어 se ressourcer(재충전하다)라는 말처럼 사람들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만 쉬는 것이 아니라, 때때로 자신의 원천으로 돌아가기 위해 멈추었다. 이들의 여름 바캉스에 대한 집착은 어쩌면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기 위한 일종의 발버둥에 가까웠다.
프랑스에서, 특히 8월의 나는 조금 다른 사람이었다. 평소에는 좀처럼 되어 볼 수 없던 사람을 잠시 흉내 내는 것 같기도 했다. 오전에는 수영장 곁에서 책을 펼쳐놓고 작가라도 된 듯 몇 줄을 끼적였고, 오후에는 지중해의 햇살에 잘 그을린 사람들로 붐비는 카페에서 현지 와인의 맛을 오래 음미했다. 해변을 마치 자신의 별장 앞마당처럼 누비는 유럽인들 사이에서 어느새 제법 자연스러운 표정의 나를 발견하기도 했다. 그때는 한없이 평범해 보였던 하루가 돌아보면 가장 특별한 하루이기도 했다. 그을린 피부의 흔적은 여름에만 머물지 않았다. 겨울이 와도 붉은빛이 피부 안쪽에 남아 있었고, 여름이 오기 전부터 다시 그 색을 되찾아가는 묘한 생체 리듬도 생겼다. 이제 나는 서울에서 다시 사무실 노동자가 되어 8월을 보내며 인생은 역사와 많이 닮았다고 생각한다. 직선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반복되는 원형에 가깝다. 사계절이 해마다 돌아오듯 길을 잃고, 자기 자신을 뛰어넘은 듯하다가도 결국 익숙한 문제로 돌아온다. 그러나 아주 가끔 이전보다 조금 나은 사람이 되어 있기도 했는데, 프랑스가 발명한, 열두 달의 질서 밖에 있는 8월은 내게 그런 의미를 일러주었다.
<윤영섭 0718sam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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