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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파리에 살아야 할 몇 가지 이유](48) '절대 에어컨을 설치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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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6-06-30 05:18 조회 35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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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마르탱 운하(Canal Saint-Martin)에 걸터앉은 사람들                                         © Arnaud Finistre/AFP


어떤 궂은 날씨에도 자기만의 방식으로 적응하는 것. 그것은 프랑스 문화의 자부심 같은 것이다. 거의 수영복 차림으로 거리를 다니거나, 젖은 수건을 목에 두르고, 한국에서 자주 보던 미스트나 '손풍기'를 사용하는 사람들도 이제 제법 많이 보인다. 북아프리카에서 올라온 고온 현상이 프랑스를 덮쳤던 2024년 이후, 센 강과 생 마르탱 운하에서 더위를 피하기 위해 '합법적으로' 수영하는 사람들도 많이 보인다. 나는 파리의 그런 점이 좋았다. 한국의 여름과 달리 프랑스의 건조한 여름은 공원의 그늘 아래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견딜 만한 축복이었다. 하지만 집 앞 약국 LED 전광판에 적힌 섭씨 45도는 그런 수준의 더위가 아니었다. 오랫동안 지속되는 숨 막히는 열기를 프랑스에서는 라 카니큘(la canicule)이라고 부른다. 라틴어로 ‘작은 개’를 뜻하는 canicula에서 온 말이라, 개 같은 날씨라고 농담하곤 했다.  7월과 8월의 어느 무더운 여름날을 떠올리게 하는 그 재치 있는 표현은 이제 예전처럼 가볍게 들리지 않는다. 보도에서도 카니큘이란 말 대신 연일 ‘폭염(vague de chaleur)’이라는 말을 앞세운다. 이것이 더 이상 정상적인 계절의 범주에 속한 일이 아니라, 기후위기의 한 단면에서 비롯된 일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다. 


6월에만 벌써 두 번째 폭염이다. 에어컨을 둘러싼 논쟁이 다시 뜨거워지고 있다. "절대 모든 곳에 에어컨을 설치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에요." 급진 좌파 정당의 대표적 인물 장뤼크 멜랑숑은 6월 극우 정당인 국민연합(RN)의 대규모 에어컨 설치 구상에 이렇게 맞섰다. 그는 자신이 프랑스 사회 전반에 퍼진 기후 감수성을 대변한다고 믿는 듯했다. 실제로 여론조사에서 프랑스인 다수는 에어컨이 환경친화적이지 않다고 보았고, 10명 중 6명 가까이가 환경 보호를 위해서라면 에어컨을 설치하느니 차라리 더위를 견디겠다고 답했다. 전력 소비니 냉매가스와 온실가스니 따져가며 정치적 논쟁을 벌이는 모습이 참 프랑스다웠다. 그럼에도 파리의 현실은 폭염에 전혀 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더 이상 디저트 가게의 녹은 케이크를 웃으며 사가거나, 일터에 나가는 대신 센 강 앞에 모여서 와인을 마시며 춤을 추는 낭만적인 여름 이야기가 아니었다. 수백 곳의 학교가 문을 닫았고, 루브르 박물관은 조기 폐관했으며 에펠탑 역시 일찍 문을 닫았다. 이번 폭염 속에서 벌써 수십 명이 숨졌고, 그중에는 더위를 피해 물에 들어갔다가 목숨을 잃은 사람들도 있었다. 프랑스는 2025년 한 해에만 폭염 관련 사망자가 거의 6,000명에 달했다. “우리의 인프라와 국토계획, 생활 리듬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기후를 전제로 만들어졌습니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기후학자 발레리 마송델모트(Valérie Masson-Delmotte)의 말이다.


실제로 프랑스의 많은 건물은 이 정도의 더위를 견디도록 설계되지 않았다. 특히 단열에 취약한 파리 외곽의 콘크리트 주거단지에는 창문 밖 철제 셔터조차 없는 경우가 많다. 냉방 기기를 들여놓고 싶어도 전기요금이 두렵고, 큰마음 먹고 작동시키려 해도 반나절씩 정전이 이어지는 일도 있다. 세계 기후협정의 이름이 된 도시의 고상함을 말하기 전에, ‘기후 불평등’ 속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시민들이 있는 것이다. 유럽에서 가장 인구 밀도가 높은 도시 중 하나인 파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폭염 사망 위험이 가장 높은 도시 중 하나로 지목되어 왔다. 외신 보도 때문인지 이번엔 한국에서도 안부를 묻는 연락이 자주 왔다. 그래서일까. 열흘 가까이 녹초가 된 나는 90년대 서울 변두리 아파트에서 갖은 방법으로 더위를 피해보려던 내 가족의 몸부림을 자주 떠올렸다. 그 오래된 궁여지책들이 이곳에서 다시 쓰이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유럽의 맑은 하늘은 역설적이다. 공기가 깨끗해지고, 빛을 반사하던 에어로졸 같은 오염 물질이 줄어든 탓에 오히려 지표는 더 빨리, 더 많이 달아오른다고 하니 말이다. 파리는 정말 다가올 기후위기 속에서도 오아시스 같은 도시로 남을 수 있을까. 아니면 이미 퇴락해가던 도시를 두고 우리가 믿고 싶었던 하나의 신기루는 아니었을까.

            

<윤영섭 0718sam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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