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 [화가 아틀리에 탐방] 김수경 작가, 불안의 형태를 '설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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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6-06-23 02:42 조회 296 댓글 0본문

김수경 작가
‘불안’은 오랜 시간 작가 김수경의 작업을 관통해온 감정이다. 20대 초반, 낯선 타국에서 홀로 삶을 시작하며 따라붙기 시작한 불안은 단순한 감정 이라기보다 존재의 상태에 가까웠다. 아무도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환경 속에서 끊임없이 머물 곳을 찾아 이동해야 했던 경험은, 마치 허공을 부유하는 하나의 먼지처럼 존재 자체의 불안정함으로 이어졌다. 외로움을 양분 삼아 자라난 그 감각은 오랜 시간 그의 삶과 작업 주변을 맴돌아왔다.
작가는 이러한 감정을 숨기거나 희석하기보다 작업의 모티브로 끌어들인다. 불안한 상태의 방, 위태롭게 재배치된 사물들,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관계들처럼 그의 작업은 삶 속에서 감각한 불안의 형태를 공간 안으로 옮겨온다. 그것은 불안을 극복하거나 제거하려는 시도 라기보다, 스스로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응시하고 관객과 함께 감각하려는 태도에 가깝다. 하지만 그의 작업에서 불안은 시간이 흐르며 단순히 사라지는 감정이 아니다. 오히려 타지의 삶에 조금씩 익숙해지고, 스스로 선택한 삶의 경험이 축적되면서 또 다른 형태로 변화해간다. 작가가 최근 이야기하는 ‘콩쥬게종(conjugaison)’ 역시 이러한 변화의 감각과 맞닿아 있다. 같은 존재라도 놓인 환경과 맥락에 따라 전혀 다른 역할과 의미를 갖게 되기 때문이다. 불안 또한 그렇게 삶의 조건에 따라 다른 얼굴로 변주된다.
어쩌면 불안은 살아 있는 존재가 끝없이 마주할 수밖에 없는 그림자 같은 감정인지도 모른다. 존재가 미래를 의심하는 순간, 불안은 시작된다. 매 순간 자신의 존재를 기록하며 불안의 형태를 길들여가는 작가 김수경의 작업 세계를 들어봤다.
질문) 본인 소개를 간단히 부탁한다.
김수경) 2019년 프랑스 투르(Tours)의 국립 고등미술학교 에콜 쉬페리외르 다르 에 드 디자인 TALM(École Supérieure d’Art et de Design TALM)을 졸업했고, 현재 설치 작업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질문) 프랑스에는 언제 왔나?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
김수경) 2015년, 22살 때 프랑스에 왔다. 당시에는 구체적인 계획이나 배경지식이 있었던 건 아니고, 막연한 동경 같은 마음이 컸다. 대학 재학 당시 한국예술종합학교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통해 아트과 수업을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메탈 작업이나 사진, 영화 수업 등을 접했다. 특히 영화에 관심이 많아서 16mm 필름으로 영상 작업도 했다. 그 과정에서 영화 철학도 많이 배웠는데, 프랑스 초기 영화에 큰 흥미를 느꼈고 자연스럽게 프랑스를 생각하게 된 것 같다.
질문) 설치 작업을 하게 된 계기는?
김수경)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다. 중학교 때부터 디자인을 배웠고, 대학도 시각디자인 전공으로 입학했다. 그런데 막상 학교에 가보니 내가 생각했던 작업 방식과는 너무 달랐다. 손으로 작업하기보다 컴퓨터 작업 중심이었고, 계속 모니터만 바라보는 환경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결국 2학년 무렵 자퇴를 했다. 이후 프랑스 보자르를 준비하면서 회화, 영상 등 여러 매체를 시도했는데, 그중 설치 작업이 가장 재미있었다. 무언가를 직접 만들고 공간을 구성하는 과정 자체가 좋았다. 전시 역시 설치 전시를 특히 좋아한다. 예를 들면 루브르나 오르세 같은 전통적인 회화 중심 전시보다는, 관객이 공간 안에서 경험하는 형태의 전시에 더 끌린다.
질문) 대표적으로 인상 깊었던 설치 작품이나 좋아하는 작가가 있다면?
김수경) 관객이 직접 참여하거나 경험할 수 있는 인터랙티브한 전시를 좋아한다. 오래전 루이비통 재단에서 열렸던 올라퍼 엘리아슨(Ólafur Elíasson) 전시에 큰 감동을 받았다. 특히 « 웨더 프로젝트(The Weather Project) »는 이후 오마주 형식의 작업을 할 정도로 영향을 많이 준 작품이다. 또 오스트리아 작가 에르빈 부름(Erwin Wurm),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알리시아 크바데(Alicja Kwade)의 작업을 정말 좋아한다. 한국 작가 중에서는 양혜규, 서도호, 이배 작가의 작업을 좋아한다.

Conjugaison (stair)
Site-specific installation wood 775 x 345 x 95 mm
Installation view : SEE Galerie, Paris, France. 2025
작품 설명 : Conjugaison은 갤러리 계단 앞에 놓인 나무 육면체가 계단이자 작품으로 읽히는 과정을 통해, 사물이 맥락에 따라 다른 정체성과 기능을 획득하는 방식을 탐구한다. 작가는 이를 자신의 다양한 사회적 위치와 연결하며, 존재가 놓인 관계와 환경에 따라 어떻게 다르게 호명되고(딸, 선배, 동료, 작가…) 해석되는지를 질문한다
질문) 작업을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개념은 무엇인가?
김수경) 작업의 출발점에는 늘 불안이라는 감정이 있었다. 직업 특성상 정착이 쉽지 않고 이동이 많다 보니 노마드적인 삶에 대한 불안감이 컸다. 특히 프랑스에 온 뒤에는 오랫동안 막연한 불안 상태가 지속됐고, 그런 감정이 자연스럽게 작업에도 영향을 미쳤다.
질문) 그 불안은 초기 작업에서 어떻게 드러났나?
김수경) 2016년부터 2018년 사이 초기 작업에서는 나무 톱밥을 먼지처럼 쌓아 의자를 만들거나, 자화상 시리즈를 통해 불안한 상태 자체를 표현하고자 했다. 특히 당시 작업의 핵심 키워드는 ‘집’이었다. 프랑스에 온 뒤 처음 2년 동안은 집을 구하는 것도 쉽지 않았고, 1년에 네 번 정도 이사를 다닐 만큼 생활이 불안정했다. 그래서 새 집에 들어가도 안정보다는 다음 이사를 먼저 걱정하게 됐다. 방 안에는 물건도 거의 없었다. 당시 나에게 집은 안정된 공간이 아니라 불안정한 공간이었다. 그래서 방 안의 오브제들을 일부러 위태롭고 아슬아슬한 상태로 재배치하는 식의 설치 작업을 하기도 했다.
질문) 시간이 지나며 불안의 형태도 달라졌을 것 같다.
김수경) 프랑스에서 살면서 설명하기 어려운 지속적인 불안은 단순히 언어의 문제가 아니었다. 나에게 너무나 당연하고 익숙했던 것들이 이곳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에서 오는 감각적인 혼란이었다. 예를 들면 집 조명이 흰색이 아니거나, 천장에 등이 없는 구조 같은 아주 사소한 일상들이 오히려 크게 다가왔다. 도시 풍경이나 외형적인 차이보다도, 내가 아무 의심 없이 받아들였던 감각 체계 자체가 달라졌다는 점이 더 크게 다가왔다. 또 인간관계에서 오는 긴장감도 있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여도 각자의 영역과 적절한 거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감정과 상황들을 퍼포먼스 작업 « Distance », 조각 작업 « Between », 영상, 사진, 회화 등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내고 있다. 다만 중심이 되는 매체는 여전히 설치다.
질문) 설치 작업과 평면 작업은 어떤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나?
김수경) 어릴 때부터 캔버스 위에서 작업해온 경험이 지금까지 이어지는 것 같다. 다만 설치와 평면은 표현할 수 있는 방식 자체가 다르다. 평면은 비교적 즉각적으로 구상하고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실용적이다. 반면 설치 작업은 보관이 어렵고 일시적인 경우가 많아 늘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서 사진이나 영상 기록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퍼포먼스 작업 « Distance »도 영상 기록으로 남아 있고, 초기의 집 설치 작업 역시 사진으로 전시를 대체하기도 했다.
질문) 최근에는 어떤 작업에 관심을 두고 있나?
김수경) 최근에는 재료의 물성 자체에 관심이 많아졌다. 환경에 따라 변하는 풍선, 비누, 파라핀 왁스 같은 재료를 사용해 기억의 불완전성이나 사회 안에서 존재의 불완전성 같은 주제를 다루고 있다. 또 보이지 않는 것, 드러나지 않는 것을 연결하고 드러내는 ‘리에종(Liaison)’의 개념에도 관심이 있다. 존재하지만 쉽게 인식되지 않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최근 작업 중인 ‘콩쥬게종(Conjugaison)’ 시리즈 역시 비슷한 맥락이다. 같은 사물이라도 놓이는 환경과 사회적 맥락에 따라 역할과 의미가 달라진다는 점에 주목한다. 예를 들면 같은 나무 육면체라도 전시장에 놓이면 작품이 되지만, 계단 앞에 놓이면 기능적인 오브제로 읽히게 된다. 결국 존재의 의미는 고정되어 있다기보다 맥락 안에서 계속 변화한다고 생각한다.
질문) 설치 작업은 물리적인 노동과 제작 규모가 큰 경우가 많다. 작업을 지속하며 현실적인 고민도 많았을 것 같다.
김수경) 설치 작품은 판매가 쉽지 않다 보니 경제적인 어려움도 크다. 그래서 전업 작가의 길을 선택한 것에 대해 고민하거나 후회했던 순간도 있었다. 그런데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더라도 결국 작가가 됐을 것 같고, 역시 설치 작업을 했을 것 같다. 생각해보면 작가를 하지 않을 이유는 너무 많다. 그런데 작업을 하지 않으면 오히려 더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 결국은 타고난 성향 혹은 운명 같은 게 아닐까 싶다.
질문) 작업을 하지 않을 때 느끼는 스트레스란 어떤 것인가?
김수경) 굉장히 불안해지고 스트레스를 받는다. 오히려 작업이 그런 감정을 해소하는 방식인 것 같다. 작업 과정에 몰입하면서 스스로 문제를 풀어나가고, 그 안에서 성취감이나 희망 같은 감정을 느끼게 된다. 그러면서 스트레스도 자연스럽게 해소된다.
질문) 평소 작업 루틴은 어떤 편인가?
김수경) 최소한 법정 노동시간인 주 35시간 정도는 지키려고 노력한다.
질문) 전시는 자주 보는 편인가?
김수경) 베니스 비엔날레는 꼭 보러 간다. 엄청난 양의 작품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고, 상업적인 흐름보다는 동시대 이슈나 미술의 방향성, 시대적 감각을 읽을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운 행사다. 마침 생일이 9월이라, 매년 그 시기에 베니스를 찾는 게 하나의 루틴처럼 됐다.
질문) 프랑스에서는 설치미술이 아직 주류 장르처럼 느껴지지는 않기도 한다. 실제 현장은 어떤 분위기인가?
김수경) 프랑스에도 설치미술 작가층과 전문 공간은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로 보면 여전히 모던아트나 전통적인 형식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한 것 같다. 아트페어 중심 구조도 여전히 크다. 개인적으로는 공모전에 참여했을 때 오히려 이탈리아에서 반응이 더 좋았다. 또 프랑스 설치 작가들의 작업 방향과 내 작업이 조금 다르다고 느끼기도 한다. 프랑스에서는 사회적·정치적 이슈나 젠더 문제처럼 보다 직접적이고 강한 메시지를 선호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나는 조금 더 개인적인 감각과 상태에서 출발하는 작업에 가까운 것 같다. 물론 사회적 이슈들이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내가 가장 솔직하게 다룰 수 있는 영역은 아니라고 느낀다. 지금은 굉장히 동시대적인, 이른바 울트라 컨템포러리(ultra-contemporary)한 시대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앞으로는 독일이나 벨기에처럼 또 다른 동시대 미술 환경 속에서도 작업을 확장해볼 계획이다.
<현 경 기자 dongsimjeo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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