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파리에 살아야 할 몇 가지 이유] Ep.43 우아한 메타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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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6-04-07 00:23 조회 433 댓글 0본문

테니스는 우아하고 단순한 스포츠다. 무용수를 연상시키는 풋워크, 찰나를 읽어내는 동체시력과 반사신경, 강한 힘과 가벼움 사이를 정밀하게 조절하는 균형 감각까지, 모든 것이 완전한 신체적 이상을 향해 있다. 이토록 복잡한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규칙은 간단하다. 넘을 수 없는 네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직사각형 코트 양쪽에 선 두 사람이 공 하나를 주고받는 것, 그뿐이다. 선수와 공이 보이지 않는 기하학을 끊임없이 그려내면 관객의 눈과 머리는 숨죽인 채 그 궤적을 본능처럼 좇는다. 승리의 짜릿함을 만들어내는 스포츠는 많지만 관객에게 이토록 미적 환희를 안기는 스포츠는 드물다. 신체적 한계의 줄다리기로 팽팽해진 코트 위에서 두 선수의 랠리가 만들어내는 독특한 리듬은 인간의 욕망을 비추는 메타포이자 경쟁으로 변형된 에로스다. 공격형이든 수비형이든 모든 플레이어는 끝내 자기 자신과의 싸움 속으로 밀려 들어가고, 끝내 라켓을 부수며 자기 파멸에 이르기도 한다. 갈등을 이렇게 이상적으로 써 내려가는 예술 작품은 드물다. 그러니 테니스라는 은유가 코트 밖의 다양한 삶을 비유하는 데 자주 호출되는 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테니스는 본질적으로 프랑스의 것이다. 중세 귀족들의 오락이었던 주 드 폼(Jeu de paume), 곧 ‘손바닥 치기 게임’이 테니스의 전신이다. 당시 프랑스인들이 서브를 넣을 때 “받으시오(Tenez)!”라고 외치는 것을 이탈리아인들이 따라 발음하다가 지금의 테니스라는 이름으로 굳어졌다고 한다. 프랑스 초기의 왕들 가운데 두 명이 지나친 열정 탓에 테니스 코트에서 죽음을 맞았고, 1789년 프랑스 공화국 또한 베르사유 궁 인근의 테니스 코트에서 이루어진 ‘코트의 서약’ 위에서 정치적 탄생을 맞았다. 테니스는 이후 빅토리아 시대 영국에서 정갈한 잔디 코트, 엄격한 복장 규정, 정교한 규칙 체계를 통해 오늘날 우리가 아는 대중 스포츠의 형태가 되었다. 테니스 코트는 이제 누구에게나 열려 있으면서도 여전히 누구나 동경하는 세계였다. 테니스는 여전히 신체의 격렬함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끝내 어떤 예의 안에 가두려고 했다. 계급적 상징 코드가 가득한 코트는 하나의 무대였고, 그 위로 튀어 오르는 테니스공은 우리의 삶을 끊임 없이 은유했다. 해방을 갈망하던 20세기 초 프랑스에서, 르네 라코스트가 고안한 짧은 소매 폴로셔츠와 함께 테니스는 마침내 우아함을 잃지 않으면서도 신체의 자유를 되찾았다.
테니스는 끊임없이 진화해 왔다. 공학적으로 설계된 라켓과 폴리에스터 스트링이 보급되고, 코트 표면이 개량되고, 신체를 극한까지 끌어올리는 훈련과 연구가 발전하면서, 서브 후 곧장 네트로 전진하는 '서브 앤 발리' 플레이는 점차 사라졌다. 베이스라인에서 서로를 고문하듯 긴 랠리를 이어가는 것이 현대 테니스의 기본 문법이 되었다. 물론 폭력적인 파워 게임 속에서 점점 조여드는 압박과 선수들의 인내력은 그것 나름의 장관을 만들었지만, 로저 페더러가 올코트 플레이로 보여준 다양한 형식미와는 구별되는 것이었다. 페더러의 한 손 탑스핀 백핸드는 특히 아름다웠다. 그의 은퇴 이후 이른바 페더러의 순간들은 끝났다. 효율과 결과의 세계에서 언제부턴가 아름다움을 말하는 일은 진부하고 식상한 일이 되었다. 수전 손택이 말했듯 아름다움의 자리는 이제 초연한 감상, 곧 흥미로움이 대신한다. 아름다움은 본래 엘리트적인 면이 있다. 그것은 지식과 분별력을 요구할 뿐 아니라, 때로 헌신까지 요구하기 때문이다. 테니스는 경기를 치를 수준에 이르기까지 수년 동안의 꾸준한 훈련이 필요하다. 얼마 전 나는 프랑스 오픈의 상징인 레드 클레이 코트를 밟았다. 투어를 맡은 젊은 선수 출신의 가이드는, 롤랑가로스가 이제 그랜드슬램 가운데 유일하게 사람이 직접 선을 판정하는 방식을 남겨둔 대회라고 내게 설명했다.
<윤영섭 0718sam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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